십일간의 꽃잎들은 세상으로 날리고

광장: Beyond Th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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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感情)은 emotion이다. 감정이란 단어 속엔 motion 즉 움직이다는 movement가 들어있는 것이다. 감정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느낌보다는 정동(情動, affect)의 마음이 움직여 겉으로 드러난다는 단어가 《광장: Beyond The Movement》(국립아시아문화전당,홍성대 연출) 518 40주년 기념 인터랙션 미디어아트전시를 설명하는데 더 맞을 것이다.

그럼 《광장: Beyond The Movement》전의 감정의 움직임이란 어디서 어디로 움직이는 걸까? 우리는 좁고 어두운 터널 같은 입구의 40년을 거꾸로 돌아가는 아날로그 시계를 통과하면 널찍한 공간에 덩그러니 서있는 구(舊)전남도청 원형분수대를 만나게 된다. 600평 전시공간에 다른 무엇도 채워진 것 없이 홀로 서 있는 분수대는 40년 전 십일 간의 고립과 이후 40년 동안 광주의 외로움처럼 절박하게 버티고 있다. 우리가 여기 이 어두운 지하전시장이 지상의 밝은 광장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쯤 되면 원형분수대 위에선 홀로 그리고 서로 밝은 빛을 내는 전등들이 오르락내리락 파동을 일으키며 전시장을 따스하게 비춘다. <웜홀:Wormhole>(유재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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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기운은 시나브로 모노톤의 지문자국과 같은 선으로 바뀌며 분수대를 중심으로 넓은 원을 그리며 펼쳐진다. 지문인 듯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같은 그리고 밤하늘 멀리 토성의 고리 같은 모노톤의 선위에는 이제 작은 행성들이 궤도를 따라 돈다. 돌고 돌다 서로를 그리워하듯 이리저리 자유롭게 부딪히는 작은 행성들을 보며 40년 전 광장에서 울려 퍼진 함성과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며 사라져간 빛나는 시민들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또 한 가지 이유가 민주평화교류원의 상설전시인《열흘간의 나비떼》에서 가져온 1980년 십일 간의 기록과 증언이 텍스트로 투사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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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순환:circle of cure>(정해운 작가)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40년을 떠돌았던 사람들의 치유와 화해의 시간이 지나면 이제 작은 행성들은 세상의 모든 색을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수천수만의 꽃잎이 되어 검고 어두운, 흑과 백만이 있던 원형분수대를 장엄한 화엄의 세계로 만들어버린다. 화엄광주(華嚴光州). 꽃과 빛만이 살 수 있는 도시, 그래서 꽃과 빛이 되어 영원한 청춘의 도시 광주를 지켜주는 영혼들은 고립과 외로움으로 봉인된 세월을 넘고 광주를 넘어 온 세상에 어둠은 빛을, 겨울은 꽃을 이길 수 없다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의 진리를 나긋하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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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mhole>과 <circle of cure>의 두 작품으로 이루어진 《광장: Beyond The Movement》는 인터랙션(Interaction)에 기반한 미디어아트 작품이다. 만지지 마시오 같은 관객과 작품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관객의 동선을 고려한 구상부터 관객의 개입과 소통으로 작품이 완성되는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image)들이다.
사십년전 광장의 분수대를 오마주한 <Wormhole>은 분수대를 비추는 거울로 우리들을 당시의 사람들과 마주하게 한다. 공중에서 내려오는 밝은 전등들은 아무런 해석도 필요없이 우리들 마음속에도 빛을 던져준다. 원형의 분수대부터 사방으로 원을 그리며 퍼지는 꽃잎들까지 둥그런 둥그런 둥그러움으로 구성된 전시의 핵심모티브는 우리들과 사십년전의 사람들을 화해시키며 광장을 넘어선다. 광장을 넘어설 때 우리의 마음도 움직이고 우리 모두 하나하나 꽃이 되어 휘날린다. 그것은 사십년전 사람들 역시 내가 겪은 이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되기를, 광주가 아닌 다른 곳에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20대의 프로젝션과 120개 조명이 동원된 키네틱 아트와 인터랙션 미디어아트라는 것만으로 《광장: Beyond The Movement》전시를 소개하기엔 싱거웁다. 그래서 이 엄청난 물량과 따스한 기술이 투입된 전시는 우리들 마음 어디를 움직였는가? 《광장: Beyond The Movement》전시는 7월 12일까지이다.



추신
모토톤의 자국과 꽃잎들과 함께 둥그렇게 움직여 볼 것.
옷 밖으로 나온 신체에 투사되는 빛과 이미지들을 볼 것.
전시가 끝나면 민주광장 원형 분수대를 따라 걸어볼 것. 기왕이면 밝은 날에.



  • 글. 한재섭 badland69@hanmail.net
    사진. ACC 제공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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