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브런치 콘서트>
ACC 브런치 콘서트 리뷰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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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이 늙은 풍경에서
앙상한 계절을 시름할 때
나는 흙을 뚜지고 들어왔다.
...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의 체온에 실망한 적이 없다...
나의 동면은 위대한 약동의 전제다.”
- 이용악, 「동면하는 곤충의 노래」 中
비가 내리는 5월의 아침, 거리에 연초록이 짙어지고 이팝나무 쌀알이 하얗게 깔렸다. 도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히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산을 들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 관객의 마음은 그리던 이를 만나러 가듯 설렌다. 드디어 다시 울려 퍼지는 무대의 ‘소리와 빛’, <ACC 브런치 콘서트>가 돌아왔다.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혔던 공연계가 깨어나고 있다. 깊은 동면의 시간 동안 관객도 예술가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함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랜선 콘서트’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온라인 콘텐츠를 즐기며 위안을 얻기도 했지만, 오히려 ‘공연’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예술가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 공연장의 빛과 냄새, 옆자리 관객의 눈빛, 연주 사이사이의 긴장감과 달아오르는 열기, 연주자의 호흡과 땀방울까지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아직... 없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브런치 콘서트>는 올해 총 9회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이야기는 TIMF앙상블 × 베이시스트 성민제, ‘TWIST IN CLASSIC’으로 시작되었다. 더블베이스, 혹은 콘트라베이스는 현악기 중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악기. 네 개의 현으로 한 옥타브 낮은 <미>까지 소리를 내는 2M가량의 커다란 악기다. 가까이서보다 멀리서 더 잘 들리는 원초적인 저음을 내며, 이 뒷줄 악기가 아니면 아무리 화려한 오케스트라 연주도 어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심장박동같은 악기를 전면에 내세워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는 연주자는 베이시스트 성민제다. 10대부터 세계3대 더블베이스 콩쿠르를 석권하며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마에스트로 정명훈, 정경화, 문태국, 리처드 용재 오닐 등의 연주자들과 환상의 호흡을 펼친 바 있다. 클래식과 재즈, 현대음악을 넘나들며 대중과의 만남을 활발히 넓혀가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은 TIMF앙상블. 통영국제음악제(TIMF)의 홍보대사 역할을 위해 2001년 창단한 이후 국내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문연주단체이다. 다름슈타트 음악제, 베니스 비엔날레, 바르샤바 가을축제, 클라라 페스티벌, 홍콩 아츠 페스티벌 등 세계 유수의 축제에서 아시아 현대음악의 대표 단체로 입지를 굳혔다. 매년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젊은 작곡가 및 예술가의 활동을 지원하며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거리두기 객석제’로 징검다리가 되어 앉은 관객들의 박수가 터진다. 그리고 등장한 TIMF앙상블, 올해 처음으로 관객을 맞이한다는 인사 속에 그간의 기다림이 묻어온다. 드디어 활이 각도를 바꾸며 오르내린다. 차이콥스키, <현악4중주곡 제1번 D장조(작품번호 11)의 제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가 객석 사이로 마른 물꼬를 트듯 흐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연주곡은 윤이상, <타피스 포 스트링 퀸테트(현을 위한 융단)(1987)>의 불안한 음조와 불협화음으로 현악기들이 울부짖는다. 쇤베르크의 12음법과 동양의 선율을 결합한 이 작품은 다소 낯설게 다가오지만 제목처럼 바이올린, 비올라, 더블베이스, 첼로가 주인공이 되어 융단을 탄다. 구르고 튕기고 미끄러지는 듯한 악기 하나하나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뒤이어 멘델스존, <현악 8중주곡 E♭장조 (작품번호 20)의 제 1악장>이 경쾌하면서도 웅장한 화음을 이루며 공연장을 채웠다. 분위기가 한껏 뜨거워졌다.
커다란 악기를 무대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들고 나온 베이시스트 성민제가 자신의 악기를 ‘콘트라베이스’라고 소개한다. 조용히 시작되는 아르니 에길슨, <더블베이스 소품>. 연주자에게 악기는 제3의 뼈인가? 콘트라베이스를 부둥켜안은 연주자와 악기는 하나가 되어 무대에 서 있다. 그 아련한 울림 뒤로 보테시니, <더블베이스 협주곡 2번 B단조>가 이어졌다. 묵직한 저음이 뿜어내는 슬픔과 기쁨의 화려한 멋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만한 곡이 있을까?... 서서히 고조됐다가 깊이 내려앉는 음을 따라가다가 저절로 눈을 감았다. 객석에서 터지는 박수와 환호가 멈추지 않는다. 연주자는 프랑스와즈 라바스, <이베리아 반도>로 공연이 끝나는 아쉬움을 위로해 주었지만 관객들은 한참 만에야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짬을 내어 나선 오전의 콘서트, 현악기들의 매력에 빠져 진동하는 감동을 안고 ACC <예술 극장2>를 나온다. 혹독한 계절을 만난 듯 움츠린 시간 동안 ‘공연’과 ‘예술’은 ‘대체불가능한 존재’의 가치를 입증하고 드디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 객석제’로 징검다리가 되었지만, 예술의 힘을 느끼기 위해 우산을 들고 찾아온 관객들의 미소는 더욱 환하기만 했다. 이렇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준비한 <브런치 콘서트>가 5월 비오는 아침, 묵직한 박동을 울리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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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나나 tonana@hanmail.net
사진. ACC 제공
20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