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들리는 클래식의 세계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

광주초이스

알지 못해도 음악은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알고 나면 더 잘 들린다. 그저 눈인사만 하던 사이도 그 사람의 사연을 알게 되면 이전과는 달리 보이는 것처럼, 음악도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들린다. 가난하고 고달픈 생애를 살다 서른한 살의 나이로 요절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 그가 죽기 1년 전에야 자신의 피아노를 장만했다는 사연을 알고 나면, 그의 피아노 소나타가 이전과는 달리 들리게 된다. 베토벤이 남긴 불후의 명곡들이 대부분 그가 귀를 잃은 후에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왜 베토벤의 음악을 ‘신이 듣는 음악’이라고 말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의 사랑, 슈만이 정신질환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내력을 알고 나면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이 한층 낭만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조금씩 알게 되는 만큼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만큼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 클래식이라는 낯선 세계와의 만남에 기꺼이 소중한 통로가 되어주는 곳이 있다. 때로는 작곡가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로, 때로는 그가 살다간 시대와 역사의 이야기로 클래식의 세계를 우리와 더 가깝게 더 깊이 연결해주는 곳. 해설과 함께 만나는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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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 동구 학동

평일 저녁 시간. 무등산 줄기가 내려앉은 동구 학동에 다락 문이 열린다. 매주 한 차례씩 열리는 ‘다락 클래식 아카데미 9기’의 클래식 수업이 있는 날. 벌써 2년 넘게 이어진 강좌다. 한 명 한 명 문을 열고 들어오는 회원들의 얼굴에 설렘과 기대가 엿보인다. 한 주 동안 소중하게 기다려온, 정말 좋아하는 시간을 대하는 특별한 마음이 느껴진다. 다락 매킨토실 홀에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이 흐르고 있다. 지난 시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에 이어 두 번째 시벨리우스를 만나는 시간이다. 다정해 보이는 부부부터 홀로 오는 이들까지 대부분 중년의 나잇대를 가진 클래식 애호가들. 신청자 목록을 보니 총 97명의 신청자에 매주 찾는 이들만 해도 평균 70여 명이 넘는 인원이다. 사설 음악감상실의 규모치고는 놀랍기까지 하다. 매주 한 차례, 이들을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이끄는 주인공은 다락의 김명선 대표다. 자신이 운영하던 영어학원의 지하에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꾸린지 올해로 9년째. 2011년 문을 연 뒤 다락을 통해 클래식을 만난 이들만 해도 천여 명을 헤아린다.

김명선 대표/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

“다락 클래식 아카데미가 벌써 9기를 넘어서 10기, 11기를 앞두고 있으니까 광주에서 클래식 좋아하시는 분들, 올 만한 분들은 다 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다락 문을 열고 벌써 9년째인데 광주에 클래식을 전파할 만큼은 전파하지 않았나 생각하죠. 처음에 문을 열 때 집사람 몰래 가지고 있던 비상금이 10억 정도 있었는데 얼마 전에 정산을 해보니까 4천만 원 정도 남았더라고요. 그 돈이 아깝지 않아요. 그 대신 클래식을 사랑하는 귀한 분들을 얻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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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클래식 아카데미 9기 강의 모습

광주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모았던 자산을 거의 전부 ‘다락’에 투자한 김명선 대표. 당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 학원으로 남부럽지 않게 돈도 많이 벌었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열기까지는 김명선 대표의 남다른 클래식과의 인연이 있었다. 열네 살, 남들은 교복 입고 중학교에 다닐 나이에 손수레를 끌고 꽃을 팔러 다니던 한 소년이 있었다. 힘겹게 수레를 끌며 충장로를 돌아다니던 어느 날, 금성레코드사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소리에 저절로 발길이 멈추었다. 자신도 모르게 레코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직원에게 무슨 곡인지를 물어보았다. 시카고 교향악단이 연주한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었다. 그날부터 하루에 한 차례는 꼭 그 레코드 가게 앞에서 클래식을 들었다. 길거리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 힘겨운 나날이었지만 클래식을 들으면 뭔지 모를 힘이 솟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꽃을 판 돈을 가지고 첫 음반을 샀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김명선 대표/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

“그때 장사하면서 번 돈을 어머니 다 드린 게 아니고 조금씩 모아서 복사판을 200환을 주고 처음으로 샀어요. 지금 돈으로 20원. 당연히 전축도 없었으니까 디스크 재킷만 보고 공부하고 머릿속으로 음악을 상상해보기만 했지요. 학동에 보육원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 원장님 댁에는 전축이 있었거든요. 동네 도서관 청소 일을 하다가 인연이 돼서 그 원장님 댁에 가서 전축을 듣고는 했어요. 그러다가 싸구려 고장 난 전축을 하나 사서 고쳐서 혼자 음악을 듣기 시작했지요.”

힘겹고 고단했던 어린 시절, 클래식 음악은 그렇게 꿈결처럼 다가와 인생이 되고 삶이 되었다. 집안 형편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검정고시를 치르면서도 결코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던 힘도 클래식에서 얻었다. 그 후로 삶의 고비마다 김명선 대표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 것도 클래식이었다. 한때 사립학교의 교감으로 초빙되어 근무하게 되었을 때, 뒤늦게 학교 재단이 교사들에게 기부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백지 사표를 쓰고 학교를 나온 일이 있었다. 그때 그런 결심을 하기 전에 들었던 음악이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2악장이었다. 그 음악을 듣고 있으니 저절로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면서 결심이 섰다. 그가 광주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영어 강사로 성공하기까지 그 인연의 출발도 클래식이었다. 클래식을 단순히 듣는데 그치지 않고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영어로 된 음악 서적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어를 터득하게 되었다.

김명선 대표/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

“제가 클래식 음악을 접할 당시에는 우리나라 말로 된 음악 서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요. 광주 불로동에 있던 미국공보원에 갔더니 영어로 된 음악 서적이 많았지요. 그래서 클래식을 공부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영어공부를 하게 됐어요. 음악 속에 미래가 보이고 그 미래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힘도 얻고 용기도 얻고 그런 시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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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어린 시절부터 일흔을 넘긴 지금까지 클래식이라는 이정표가 있었기에 삶을 더 충실히 살아올 수 있었다. 단순히 듣고 즐기는 음악이 아니라 그 음악가의 삶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고 삶의 길잡이가 되는 음악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베토벤의 삶을 알게 되고, 그렇게 베토벤의 기적과도 같은 삶에서 인생의 의미를 배우는 시간. 베토벤이 귀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런 위대한 음악이 나오지 않았을 것처럼 인생도 고난을 극복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클래식을 통해 깨달았다.

그렇게 자신이 클래식을 통해 만난 삶의 행복과 풍요로움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소망으로 지금까지 ‘클래식 전도사’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자신이 몸담았던 학원에서 어린 제자들에게 클래식을 전하기 위해 애를 썼다. 입시에 지친 아이들을 위해 학원에 음악감상 공간을 따로 만들어 휴식 시간마다 클래식을 접할 수 있게 했다. 요즘도 그때 제자들을 만나면 영어 선생님이 아니라 음악 선생님으로 기억할 정도로, 선생님 덕분에 인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인사도 제법 듣는다. ‘다락’의 문을 연 지 올해로 9년째. 그 시간만큼 통장 잔고는 가벼워졌지만, 결코 후회는 없는 세월이다. 다락을 통해 광주에 클래식 저변을 넓혔다는 자부심, 그로 인해 클래식을 사랑하는 귀한 분들을 만났다는 감사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김명선 대표/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

“다락에 오신 분들이 다들 정말 마음이 맑으신 분들이에요. 이 복잡하고 험한 세상에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제 인생의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참 좋은 분들을 음악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구나. 이분들을 소중히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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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9일 제1회 다락콘서트 / 사진출처 : 다락

학동에 자리한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은 주로 오후 시간에 문을 연다. 김명선 대표가 해설을 하는 클래식 아카데미가 일주일에 한 차례 진행되고 국내외 유명 음악인을 초청해 진행하는 다락콘서트도 벌써 97회 넘게 열렸다. 때때로 유명 연주회 실황 공연을 상영하기도 하고 토크 콘서트, 인문 강좌가 진행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다락은 남구 행암동에 다락플러스 신관을 개관했다. 오후 시간에만 문을 여는 다락 본관과 달리 평일 오전부터 문을 열어 누구든 편하게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클래식을 공유하고 싶은 김명선 대표의 바람으로 집에서 듣던 고급오디오 시설을 옮겨와 다락플러스관을 꾸몄다. 다락플러스관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페라 전곡 감상반이 운영되고 다락 클래식 아카데미 10기를 모집해 올 3월부터 강좌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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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 플러스관. 남구 행암동(2019년 11월 오픈) / 사진출처 : 다락

클래식 음악 전공자나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이상, 많은 이들에게 클래식은 여전히 낯선 장르이다. 소나타가 무엇이고 실내악, 협주곡은 무엇인지. 조성은 뭐고 단조는 무엇인지. 그래서인지 클래식 음악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생각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도 그 사람의 살아온 내력을 알게 되면 더 가까워지듯이 클래식도 그렇다. 클래식과 친구가 되게 도와주는 ‘다락’과 만난다면 클래식 음악은 더는 낯설고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저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닌, 작곡가의 삶과 그가 살다간 시대와의 연결을 통해 마음으로 듣는 클래식. 어느 날은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를 알게 되고 또 어느 날은 슈베르트의 음악 세계를 만난다. 시벨리우스, 슈트라우스, 구스타프 말러, 에드워드 엘가, 그리그, 드보르작... 그리하여 단순히 흘려들었던 클래식이 나의 삶으로 녹아 들어오는 순간, 다시는 헤어날 수 없는 클래식의 매력 속에 오롯이 빠져들게 된다. 클래식 음악의 울림과 듣는 이들의 떨림이 함께 하는 공간, ‘다락’으로 초대한다.

김명선 대표/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

“내 삶이 음악이에요. 내 삶의 동반자. 식사를 해도, 술을 한잔해도 음악과 함께하는 거죠. 대중음악도 음악이고 클래식도 똑같은 음악인데 요즘 대중음악은 돈이 안 되면 작곡을 안 해요. 그런데 슈베르트를 예로 들면, 약혼자가 ‘교사를 그만두면 당신과 헤어지겠다’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각오를 하고 작품을 썼어요. 돈이 만든 요즘 대중음악 작품과 같을 수가 없죠. 그래서 회원들이 클래식 음악에 빠져드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보람이 커요.”

김명선 대표가 추천하는
클래식 한 곡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베토벤이 귀가 굉장히 아플 때 작곡한 곡인데도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면 어두운 분위기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 귀를 신에게 갖다 바치고 대신에 신이 듣는 음악을 가져왔다고 생각될 정도로... 신이 듣는 음악을 듣고 싶다면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
주소 : 동구 학동 의재로 13-3
cafe.daum.net/darakclassic

다락 플러스관
주소 : 남구 효우로 230번길 28

  • . 유연희 heyjeje@naver.com
  •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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