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섬들의 나라 누산타라 전

신비로운 혼합과 공존의 세계, 누산타라

이슈&뷰

인도 저 너머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
누산타라, 그 섬들이 있다
수많은 빛깔의 문화를 품고서

섬은 고립됨과 동시에 열려있다. 육지와 닿지 않지만 미지의 거대한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곳. 섬. 그러기에 ‘섬’은 언제나 가려진 신비의 땅, 미지의 영역이다. 2019년 11월 22일부터 ACC 라이브러리파크 기획관 3에서 열리고 있는 [많은 섬들의 나라 누산타라] 전시회는 우리에게 섬이란 곳이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거대한지를 확인케 하는 특별한 전시이자, 아시아 문화의 자유로움과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다.

세계에서 섬들이
가장 많은 나라,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섬들,
‘누산타라’의 생활과 예술, 문화를 소개할
43개국, 7천여 점이 인류의 유산!
ACC 개관 4주년을 맞아
네덜란드 델프트 시의
누산타라 컬렉션 최초 공개

누산타라는 ‘많은 섬들의 나라’라는 뜻의 옛 자와어(인도네시아 자와 섬 중부 및 동부의 자와족이 쓰는 언어)로 현대 인도네시아의 뿌리로 여겨지는 마자파힛 왕국 사람들이 스스로를 불렀던 이름이다. 13세기 이후 역사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마자파힛 왕국. 그들이 명명했던 누산타라의 전통과 문화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보존되고 전승됐으며 변용, 공존하게 됐는가? 그 대답이 바로 [많은 섬들의 나라 누산타라]전이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바닷길, 섬으로 인도하다>, 2부 <많은 섬들의 나라, 누산타라>, 3부 <인도네시아, 세계와 교감하다> 이다. 1부에서는 신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바닷길을 통해 알려진 누산타라의 이야기로 예나 지금이나 누산타라는 인도양과 태평양,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바닷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선박, 물자, 사람, 문화 등 다양한 것들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이 교역로를 통해 교류한 것은 ‘물자’만이 아니다. ‘이야기’, 즉 각 섬의 신과 종교, 설화와 신화도 서로 교류하게 된다. 계절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 누산타라에서 신화는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한 섬에서 머물며 살이 붙으며 새롭게 창조되기도 했다.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누산타라 특유의 세계관과 문화적 다양성이 꽃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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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바닷길, 섬으로 인도하다>에서는 <라마야나>라는 대서사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누산타라 전역에 뿌리내린 신화와 문화예술의 전통을 대해 알려주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직면하는 수많은 상황과 인간관계를 제시하고 정의 실현과 인생의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라마(비슈누 신의 7번째 화신)의 영웅담, <라마야나>. 대항해 시대인 15세기 이전에는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누산타라답게, 힌두문학의 정수 <라마야나>에는 인도신화와 철학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영웅담을 그린 회화뿐만 아니라 이 영웅담과 관련된 조각상들도 눈에 뜨는데 원숭이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한 하누만 조각상은 <라마야냐>의 주인공 라마의 조력자이다. 헌신과 용기, 힘을 상징하는 신답게 대중들에 사랑받는 캐릭터이고, 가루다 조각상 역시 라마의 수호자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사라스바티 조각상과 비슈누 조각상은 섬세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가진 예술품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누산타라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질 듯하다. 이처럼 <라마야나>등의 대서사시는 누산타라의 문화 상징이자 근간으로 회화, 조각, 연극 등 많은 예술작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누산타라 특유의 생성과 소멸, 변용과 융합, 이로 인한 다양성은 ‘종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라마야나>에서는 힌두교의 영향을, 상아로 만든 <부처상>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데, 13세기 이후에 등장한 마자파힛 왕조에서부터 누산타라는 힌두교와 불교를 융합한 ‘힌두불교’ 의 자장 안에 놓이게 된다. 이후 마자파힛이 정복된 이후에는 발리를 제외한 누산타라 전역이 이슬람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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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많은 섬들의 나라 누산타라>에서는 생활에 관련된 건축‧복식‧의례도구‧생활용구 등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자원의 보고, 칼리만탄>, <향료군도, 말루쿠>,​ <전통의 요람, 자와> <교통의 요지, 수마트라>, <항해가들의 땅, 술라웨시>등 누산타라의 대표적인 지역의 건축‧복식‧의례도구‧생활용구에 담긴 삶의 방식은 다채로우면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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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와 갈대, 조개껍데기로 만든 상자, 자개로 만든 브로치, 귀 장신구, 씹는 담배도구, 황동 주전자, 의례용 종, 주황색 머리띠와 목걸이 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생활이 만져질 듯 정겹다. 자와족의 정갈한 의복에서는 쌀을 풍족하게 생산할 수 있었던 자와섬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통코난’이라 불리는 토라자족의 전통가옥이다. ‘앉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한 ‘통코난’은 주거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아닷(관습)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합의하는 공동체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붕의 양쪽 끝이 하늘에 닿을 듯 치솟아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하늘의 뜻을 듣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은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팬던트는 누산타라 특유의 페라나칸 문화를 보여주는 특별한 유물이다. 이 섬세하고 기괴한 모양의 부적은 페라나칸 공동체에서 아이들이 부적으로 착용했다고 전해진다. 페라나칸은 중국계 이주민과 토착민의 결혼으로 생긴 집단을 칭하는 단어로, 말레이어로 아이를 뜻하는 ‘아나크’에서 유래한 것인데 ‘현지에서 태어난’, 또는 ‘후손’을 뜻하는 말이다. 15세기 정화의 원정, 17세기 네덜란드의 바타비아 건설 등으로 증가한 중국계는 중국 본토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했고, 누산타라에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인도의 유행까지 받아들여 종국에는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누산타라 특유의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페라나칸 문화는 ‘다양성 속의 통일’ 이라는 인도네시아의 국가이념과 마찬가지로 다문화, 다중정체성을 인정하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혼합과 공존의 문화의 상징이다. 누산타라는 그렇게 모든 강물이 모여드는 바다처럼 수많은 문화들이 흘러들어 거대한 문화적 지형을 형성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부, <인도네시아, 세계와 교감하다>는 공존의 문화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다. 인도네시아의 바틱(천)‧ 크리스(단검)‧ 와양(그림자극)은 오랜 역사적 기원과 더불어 고도의 상징성과 예술성‧기술적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만큼 누산타라 특유의 문화적 독창성과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인류가 인정한 누산타라의 전통 문화유산들 속에도 혼합과 공존의 문화적 다양성이 녹아있다. 점점이 그려낸 예술 세계, ‘바틱’은 천에 무늬를 나타내는 염색방법인데 특히 납염으로 만든 전통직물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 운남성에서도 유명한 기법이다. 바닷길을 따라 이어졌을 문화교류를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발리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문화상징이자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발리의 예능 ‘바롱무용’에 쓰는 탈에서는 중국의 사자탈이 떠오른다.

그 어떠한 화려함도 어느새 하나로 덮어버리는 그림자의 힘!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 ‘와양(그림자)’는 혼합과 공존의 누산타라 문화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문화유산이다. 현란하지 않아도 존재감이 확실한 그림자처럼, 인도, 중국, 유럽, 토착문화가 하나의 빛깔로 수렴되며 존재감을 보여주는 누산타라 문화를 통해 자유롭고 역동적인 아시아문화의 미래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 . 최민임 samagg@hanmail.net
  • 사진.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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