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의 빛, 하나의 공동체

마음을 밝히는 빛, 우리 모두를 잇다

이슈&뷰

빛, 마음에 스며들다

예술은 어떻게 마음에 스며들까. 멋들어진 자연 광경, 혹은 실물과 똑같이 그려낸 화가의 그림에 의해? 아니면 고대의 멋진 조각상들을 감상하며? 혹은 첨단 테크놀로지가 만든 환상의 세계에 의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란 시대, 언어, 인종, 기술 등 그 모든 것을 넘어선다. 그렇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들의 삶이 가진 근원적 가치가 아닐까.

이번 전시는 빛이 주요하고도 유일한 작품이다. 빛은 미디어 기술로 구현되었지만, 빛이 향하는 곳은 바로 우리들이다. 복합 1관을 들어서는 어두운 통로를 지나 전시장을 환히 밝힌 빛의 향연을 맞이하는 순간, 현실의 무게 따윈 사라지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무어라 설명하지 않아도, 해석해보려 애쓰지 않아도 바로 전해지는 작품의 메시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높다란 전시장을 가득 메운 빛은 마음을 환하고도 더 환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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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한·아세안의 평화와 소망을 연결하다

이번 전시는 특별한 목적성을 가지고 개최되었다. <한·아세안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것으로, 사람(Female), 평화(Peace), 상생(Prosperity)의 3P 공동체 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 아세안 10개국의 공통 문화 요소인 물, 빛, 풍등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3P 공동체 정신을 ‘인터렉티브 키네틱 미디어 체험전’으로 구현해냈다. 관객들은 작품이 설치된 공간 안으로 직접 들어가 상호작용적 체험을 하며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있다. 지난 10월 25일 진행되었던 오프닝 프로그램에서는 미디어아트 전시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조금은 특별한 광경도 연출되었다. 그간 역사와 전통을 함께해 온 아시아 10개국의 대표자들이 모두 자리하였고, 이들의 손끝에서 작품의 빛이 시작되었다. 각국 대표자들이 손을 맞잡을 때마다 하나씩 차례로 점등되어 한국과 아세안을 상징하는 열한 개의 등이 먼저 밝혀지고, 연이어 300개의 모든 풍등이 점등되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서로의 역사 속 빛으로 상징되는 번영의 과정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한·아세안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이 시작의 지점에 전시의 핵심이 있다. 바로 인간의 체온으로 작품의 구동을 가능케 한 것이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미디어 스튜디오 ‘사일로 랩(SILO LAB)’은 이 특별한 인터페이스 장치가 기계가 아닌 인간의 체온으로 가능하도록 제작했다. 손과 손으로 연결된 미세한 전류가 작품의 구동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는 따뜻한 인간의 체온으로부터 시작된 동력인 것이다. 많은 기술들이 삶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의 따뜻함이라는 지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한·아세안의 30년, 그리고 미래의 시간에도 지속되어야 할 평화와 상생은 바로 인간의 마음으로부터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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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하늘과 땅을 감싸는 따스한 마음

전시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나뉜다. <풍화(風化)>와 <묘화(妙花)>로 전시장 천정에 띄워진 풍등과, 바닥에서 우뚝 선 구조물에 설치된 백열전구가 발하는 빛, 그 두 개의 빛이 한데 어우러진다. 마치 하늘과 땅의 빛처럼 높다란 전시장의 전체를 감성적인 빛의 색채로 물들인다.

풍등은 열을 이용하여 공중에 띄우는 등으로, 그 기원은 B.C 3세기 고대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공명등(孔明灯)이라 하고 대만에서는 천등(天燈)이라고 부르며, 제갈공명이 풍등을 발명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임진왜란 당시 군사용 신호로 밤하늘로 띄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에 와서는 염원의 의미를 가진 감성적 메신저의 역할이 더 강하다. 이번 전시에는 염원을 하늘로 띄우는 제의적 의미인 <풍화(風化)>로 한국과 아세안 간 평화와 상생의 의미를 담아 풍등이 띄워진 것이다. 천정에서부터 아래로 수직적 움직임을 통해 염원을 담아 하늘에 올리는 제의적 의미를 담아냈다. <묘화(妙花)>는 백열전구가 작품의 주 소재로, 1879년에 발명되어 100년 이상 인류의 삶과 함께 해 온 빛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이제는 다른 고효율 제품들에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가느다란 필라멘트가 온 힘을 다해 발산한 빛의 기억은 많은 이들에게 추억의 빛으로 남아 있다. 첨단 기술에 의해 물러나게 된 백열전구의 빛이 소멸되는 과정이 작품으로 재탄생됨을 통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삶의 뒤편으로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작품은 총 세 파트로 나뉘어 한 파트당 6~7분 동안 음악과 함께 빛의 움직임이 지속된다. 잔잔했던 선율은 두 번째 파트에서 역동적인 선율로 바뀌고 움직임이 더해진다. 세 번째 파트에서 풍등은 손에 닿을 수 있는 곳까지 내려와 관람객들은 풍등 사이를 가로지르며 작품의 한가운데에서 ‘인터렉티브 키네틱 미디어 체험전’의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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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마음과 마음을 잇다

미디어 기술로 구현된 빛이지만, 빛이 시작되게 하는 건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고, 빛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우리의 마음을 잇고 이어가는 것이다. <풍화(風化)>와 <묘화(妙花)>가 어우러지며 발산하는 빛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밤하늘 빛나는 별의 영롱함처럼, 너른 언덕 고요한 바람의 일렁임처럼 안온하게 마음을 감싸 안는다.

빛의 향연 한가운데에서 드는 생각은, 그 어떤 기술의 발전에도 예술이 향하고자 하는 지점은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인류의 근원적 에너지이자 문명을 열어준 빛은 현재의 우리에게 기술을 넘어 예술을 경험케 하고 위로를 가져다준다.

공중에서 부유하는 삼백 개의 빛과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빛,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향하는 곳은 바로 우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마음’임을, ‘빛’은 지금 현재를 넘어 더 큰 세상으로 향하는 따뜻한 시선임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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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문희영 moonhy19@naver.com
  • 사진.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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