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영화처럼

빅도어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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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재즈가 만났을 때
가을밤의 낭만이 시작된다!
꿀 같은 연휴의 시작을 연
빅도어 시네마



추석을 하루 앞둔 9월 12일.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성인이 된 후 어른들에게는 어떤 이유든 압박감이 드는 명절. 어른들에게 추석이란 마냥 쉬는 날만은 아니기에 하늘이 무거운 만큼 몸과 마음도 무거웠다. 그 무거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그 마음을 여기서 쉬어가라는 듯, 빅도어 시네마의 오픈 객석은 캠핑장처럼 꾸며져 있었다. 가벼운 캠핑 의자와 탁자, 빈 와인 병을 활용한 작은 조명, 한 쪽에 일렬로 선 무지개 빛깔 해먹까지 반겨주는 이 산뜻한 마중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이곳에는 꽉 막힌, 그리고 정해진 자리에만 앉아야 하는 극장의 압박감이 없었다. 널찍하게 떨어뜨려 놓은 의자들, 정해지지 않는 자리,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공간 구성만으로도 이미 마음에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들어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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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늘의 프로그램을 확인한다. ‘추석, 재즈와 함께하는 영화’를 주제로 9월 12일은 [브라보 재즈 라이프]가, 9월 13일은 [위플래쉬]가 빅도어를 채울 것이다. 사전공연으로 광주에서 활동하는 재즈밴드, ‘NS재즈밴드’가 객석의 온도를 높였다. 그래! 우리는 이제 재즈의 계절 속으로 빠져들 시간인 것이다.

1세대 재즈뮤지션들에게 바치는 존경과 헌사
변주되는 재즈처럼 재즈와 인생을 담은 영화
<브라보! 재즈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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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는 저녁 7시 30분이 가까워 올수록 어둠은 깊어지고 관객들의 발길도 더 많이 이어졌다. 어둠은 기꺼이 영화를 도드라지게 해줄 검은 장막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스크린 안에서 신기에 가까운 폭발적인 퍼커션 연주를 마친 류복성 선생이 이렇게 일갈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요즘 음악하는 젊은 애들은 죽이는 게 없어. 인생이 없지. 음악이라는 게 뭐야? 그게 인생이지. 그게 예술이고!”

그저 재즈만을 논하는 영화가 아닌 예술을, 인생을 이야기하겠노라 마치 선언하는 류복성 선생의 말처럼, <브라보! 재즈라이프>는 한국 재즈 1세대의 기록 다큐영화이다. 6·25 전쟁 이후 주둔한 미 8군 쇼 무대를 통해 재즈를 배운 이들이 바로 한국 재즈의 1세대들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재즈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이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몇몇만이 남아 끊어질 듯한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무참한 현실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나선 이가 있었다. 바로 재즈칼럼리스트 남무성 씨다. 늘 펜으로 재즈를 기록하던 그가 마치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즉흥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재즈 1세대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무자비한 시간이란 마수에 걸려 재즈 1세대 뮤지션들이 사라지기 전에,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마음 한 자락으로 카메라를 든 것이다. ‘재즈 1세대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영화라기보다는 기록으로 남기자!’라는 마음을 시작했다는 남무성 감독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어쨌든 재즈 1세대들은 남감독의 호명에 응답하며 한 자리에 모였고, 남감독은 후배들과 재즈 1세대의 기념음반 제작과 헌정 합동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꾸밈없이 담백하게 담아낸다. 90분짜리 영화를 만드느라 900분을 찍었다는 남감독의 진득한 기다림과 애정 어린 시선은 재즈 1세대에 대한 존경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오랜만에 녹음을, 연습을, 그리고 공연을 하는 재즈 1세대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진짜 영화 주인공이 된 ‘영화’같은 일을 기꺼이 즐기며 기뻐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 영화가 얼마나 큰일을 해냈는지 공감하게 해준다.

영화는 재편집되어 단락별로 나뉘어 압축 상영됐고, 단락이 끝날 때 마다 남무성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영화 제작 결정이 단 5일 만에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얘기에서부터 서로 개성이 너무 강해 잘 융합되지 않았던 1세대 재즈 뮤지션들의 윤활유로 막걸리가 자주 등장했다는 제작 에피소드, 그리고 재즈란 ‘나이가 들수록 사색하며 곱씹어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정의, 무릇 일상은 주어진 것이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이나마 변주하는 삶이 바로 ‘재즈라이프’란 해석까지,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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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영화 <브라보! 재즈라이프>가 주는 감동을
무대 위 공연으로!
재즈 1세대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귀하고 값진 자리



1세대들과 후배들의 연주가 대미를 장식하고, ‘삶을 지탱하는 열정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외로움’이라는 영화 속 외침이 가슴을 두드리는 사이 빅도어 시네마도 서서히 끝이 났다. 이제 엔딩 크레딧을 기다리는 사이, 빅도어 시네마 무대에서는 다시 한 번 ‘영화’같은 일이 벌어졌다. 스크린을 물들였던 1세대 재즈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진 것이다. 영화 <브라보! 재즈라이프>의 카피, ‘죽이는 거 들려줄까?’가 말 그대로 실현되는 현장이었다. 영화에 출연한 5명의 재즈 1세대 뮤지션의 연주는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다. 화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말 그대로 ‘죽이는’ 공연이었다. 초로의 재즈맨들의 뜨거운 열정에 감복했던 것인지, 어느새 예술극장 야외무대는 물기 머금어 무겁던 하늘에서 맑고 청명한 완연한 가을밤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변주되는 재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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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음악과 영화와 이야기와 공연이 함께한 2019년 9월의 빅도어 시네마. 예술극장의 야외무대의 너른 품 속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 다니고 해먹 위에서 자유롭게 가을밤을 유영했다. 젊은 커플들은 머리를 기대며 영화와 사랑에 빠져 들었고, 또 어떤 중년의 재즈 팬은 무대 코앞까지 가서 역사적인 1세대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을 동영상으로 찍기 바빴다. 빅도어 시네마를 각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즐겁게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빅도어 시네마의 최고 인기석, 해먹의 무지개 빛깔처럼 저 마다의 행복한 추억이 한가위의 보름달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2019년 9월 12일 밤, 지리멸렬한 일상, 껌처럼 눌어붙어있는 만성 피로 속에서도 근근이 한 달을 버텨나갈 ‘행복’이라는 처방전을 받았다. ACC 빅도어 시네마라는 이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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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민임 samagg@hanmail.net
  • 사진.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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