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음력 7월

귀신의 달과 중원절

아시아문화연구소



만약, 저승의 문이 열리고 배고픈 귀신들이 몰려와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며 한 달 동안 이승을 헤집고 다닌다면 어떨까?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주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을까 싶다. 아귀(餓鬼)와의 한 달간의 동거, 이는 필자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대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믿고 있는 민간 신앙이다.

예전부터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아시아 여러 국가는 중국의 주요 명절을 같이 쇤다. 설, 정월 대보름, 청명절, 중원절, 추석 등은 중국의 대표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다. 그중 음력 7월의 귀신의 달과 중원절은 가장 독특하고 신비로운 명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음력 7월 보름에 백종(百種) 또는 백중(百中)이라는 풍속이 있지만,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추수 감사의 성격이 강해서 대만의 중원절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만 사람들에게 음력 7월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일찍이 음력 7월에는 추수를 시작하므로, 제사를 통해 조상에게 감사의 제를 드리고, 내년에 더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이는 그 후 유교, 불교, 도교 등의 사상과 결합하여 다양한 제사의 형식으로 파생되었다.

《논어》에서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는 예로써 장사 지내고, 예로써 제사 지낸다”(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며 효 사상을 강조하였는데, 유교 사상에서 귀신은 바로 선조, 선인인 조상을 뜻한다. 중원절은 후손이 조상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상이 후손을 직접 찾아오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때 청명절 혹은 기타 명절과 비교하여 더욱더 신중하고 성대하게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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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우란분법회. 사진 : 양영자


불교에서는 음력 7월의 15일을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 칭한다. ‘우란’은 범어 ‘Ullambana’의 음역으로 거꾸로 매달림(倒懸)을 뜻하는데, ‘목련이 어머니를 구하다’(目蓮救母)라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석가모니에게 대목건련(大目犍蓮, 약칭 목련)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수행은 제법 깊이가 있었으나, 그의 어머니는 세상에서 모든 악행을 저지르다가 지옥에 떨어져 아귀가 되어 거꾸로 매달리는 벌을 받고 있었다. 목련이 석가모니께 도움을 청했더니 7월 15일에 각종 과일과 기름초, 침상 등의 제수용품을 준비하여 각종 신과 승려에게 공양하면, 신들의 능력을 빌어 어머니를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목련은 그대로 행하고 어머니를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이 이야기는 구전되어, 고통받고 있는 망령들을 구해내는 우란분법회(盂蘭盆法會)의 의식이 되었다.

도교의 전설에는 용왕의 딸이 진자도(陳子禱)라는 남자와 결혼하여 아들 셋을 낳는 이야기가 있다. 장남은 1월 15일 상원(上元)에 태어난 천관대제(天官大帝)로 천신을 통솔하면서 인간에게 복을 주었고, 차남은 7월 15일 중원(中元)에 태어난 지관대제(地官大帝)로 구주(九州), 팔극(八極)의 신들을 통솔하고 인간의 죄를 사면하였다. 삼남은 10월 15일 하원(下元)에 태어난 수관대제(水官大帝)로 수신(水神)을 통솔하고 사람들의 재액을 막아 주었다. 이들 삼관(三官)은 속칭 삼계공(三界公)이라 불리는데, 자신들이 태어난 날에 인간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선행과 악행을 살피고 돌아간다. 음력 7월 15일은 저승을 주관하는 지관대제의 탄생일로 ‘중원절’(中元節)이라 칭하며, 화려하고 성대한 제사로 공양과 함께 귀신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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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관대제(三官大帝) 사진 : 타이베이시 관두궁(關渡宮)


대만의 음력 7월은 가가호호 크고 작은 제수를 준비하고 향을 피우며 제를 지내는 달이다. 그 상차림의 정도가 가장 큰 명절인 음력 설 못지않게 성대하다. 다른 나라보다 대만에서 중원절이 더욱더 중요시되고 성대한 것은 중국 본토 한족이 대만으로 이주한 역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나라 시대에 해금(海禁) 정책이 실시되어 대만으로의 이주를 금지하자, 사람들은 밀항을 통해 대만으로 이주하였다. 해금이 풀린 후에도 가족과의 동반 이민은 금지되어 대만에서 아내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민(羅漢腳)이 양산되었다. 바다를 건너는 동안 무수한 사람이 사망했을뿐더러 무사히 대만에 도착해도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토지를 둘러싼 종족 간의 무장충돌, 원주민의 항쟁, 주일귀(朱一貴)와 임상문(林爽文)의 민란, 전염병, 천재지변 등 무수한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은 제사를 모실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이 되어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중원절이 되면 대만 사람들이 자신의 조상뿐만 아니라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배고픈 망령들을 달래기 위해 더욱더 많은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이다. 이렇듯 효 사상과 자비와 연민을 기반으로 한 대만 사람들의 조상과 망령을 위한 제사의식을 푸두(普渡)라고 부르는데, 7월 15일 중원절 당일 치르는 의식이라 중위안푸두(中元普度)라고 하며, 음력 7월 한 달을 ‘귀신의 달’이라고 한다.

대만 사람들은 음력 7월 1일 자시(子時)가 되면 귀신의 문이 열리면서 저승에 있는 귀신들이 이승으로 내려왔다가 음력 7월 30일이 되면 다시 돌아간다고 믿는다. 그 한 달 동안 대만 전역에서는 죄를 관장하는 지관대제(地官大帝), 거주 지역을 관장하는 토지공(土地公), 조상, 주인 없이 떠도는 배고픈 망령들 순서로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우며, 지전(紙錢)을 태우면서 기원을 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묘회(廟會) 행사에서는 사원 앞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거자이시(歌仔戲)라는 대만 전통 오페라와 인형극을 공연한다. 게다가 카퍼레이드용 트럭 위에서 연예인의 콘서트와 노출이 심한 젊은 아가씨들의 위문 공연까지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이 주인 없는 배고픈 망령들이 기쁘게 즐겨 자신들에게 해코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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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절의 성대한 제사상. 사진 : 부성집경방(府城集慶坊)


귀신의 달에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항구도시 지롱(基隆)에서 열리는 150년 역사의 지롱중위안지(雞籠中元祭)는 대만 교통부 관광국이 지정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 12대 민속축제 중 하나로 육지와 물 위에 등불을 띄워 외로운 망령들의 길을 인도하는 의식을 치른다. 이란(宜蘭)의 터우청(頭城)과 핑둥(屏東)의 헝춘(恆春)에서 열리는 치앙구(搶孤)는 제사음식을 놓고 귀신과 격투를 벌이는 행사이다. 소기름으로 범벅이 된 12개의 장대 기둥을 타고 올라가 금메달과 우승기를 쟁취하는 경기인데, 인간의 용맹함으로 저승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귀신을 쫓아내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귀신의 달 행사는 외로운 망령들이 이승을 떠돌아다니며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귀신의 왕인 종쿠이(鐘馗)가 무당(乩童)에 빙의하여 귀신을 저승으로 보내는 의식(鐘馗送孤)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이렇듯 대만 사람들은 이승을 떠도는 외로운 망령들을 ‘좋은 형제들’(好兄弟)이라 부르며 귀신의 달에 융숭한 대접으로 공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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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회 행사로 치러지는 대만 전통 뮤지컬 거자이시(왼쪽)와 인형극. 사진 : 부성집경방


귀신의 달에는 많은 금기 사항이 있다. 예를 들면, 음력 7월에는 결혼, 이사, 공사, 여행, 늦은 귀가, 물놀이 등등이 모두 금기시되는데, 이는 대만 사람들의 생활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부 대만 젊은이들이 중원절 당일 결혼을 한다든지, 귀신 퍼레이드를 한다든지, 콘서트를 열어서 귀신과 즐긴다든지 하는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파격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는 공자의 말씀은 수천 년 동안 대만 사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대부분은 귀신의 달에 아직도 경외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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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롱중위안지 전경. 사진 : 지롱문화국


이 때문에 관련 산업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가장 뚜렷한 예가 음력 7월에는 결혼, 여행, 부동산, 자동차 매매 관련 산업이 비수기를 맞는 것이다. 반면, 귀신들에게 공양하는 의식 덕분에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은 성수기를 맞이하여 24시간 영업 체제로 전환한다. 일반 가정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좋은 형제들’을 위한 제사용품, 즉 고기, 생선, 과자, 사탕, 술, 음료수, 담배, 빈랑, 지전 등을 대량 구매하여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줄을 세워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청나라 시대 복건순무사(福建巡撫吏)를 지낸 왕개태(王凱泰)는 〈중원절유감〉(中元節有感)이란 시에서 “도장에서 혼령들을 위해 제를 지내니 우란의 원래 의미는 살아 있으나, 홍전을 문머리에 붙이고 산 같은 고기와 바다 같은 술로 중원을 경축하는구나”(道場普渡妥幽魂, 原有盂蘭古意存. 卻怪紅箋貼門首, 肉山酒海慶中元) 하고 그 사치와 허례를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청나라 시대부터 만연한 중원절의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2014년 대형마트, 슈퍼마켓, 편의점의 중원절 매출액이 200억 대만 달러(한화로 약 7,000억 원)에 달했다고 할 정도이니 대만 내수 경제에 아주 중요한 시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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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춘에서 열리는 치앙구 행사 모습. 사진 : 대만관광국


어쩌면 미신 같기도 하고, 어쩌면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귀신의 달 그리고 중원절 풍속은 대만 사람에게는 그만큼 절실하고 염원을 가득 담은 신앙이자 생활이 되었다. 음력 7월에 대만을 방문한다면 곳곳에서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 사진. 양영자 yingzi@g2.usc.edu.tw

    현, 대만 실천대학교 국제경영학과 조교수
    대만문화대학 박사
    전공, 중국학(중국경제, 한중경제교류),
    논저, 《2018 가오슝 네이먼 송지앙전 축제 효과 분석》(2018), 《삼합일선거》(1999, 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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