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티스트 언해피서킷

예술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질문

레지던스

언해피서킷


‘언해피서킷(Unhappy Circuit)’은 컴퓨터 알고리즘 음악과 사운드 아트를 중심으로 디지털 미디어, 실험예술 그리고 과학과 공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경계들이 서로 결합하고 확장해나가는 지점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는 예술가로서 새로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통해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이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고, 우리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언해피서킷은 그것이 바로 예술과 과학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함께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예술이 츨현해왔다. 그런 현상은 필연적이다. 구세대와 감성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젊은 예술가들이 본능적으로 새로운 예술언어를 표출하기 때문이다. 이제 상당수의 예술가들은 미술, 음악, 연극, 영화, 사진 등 고전적인 장르 개념을 가지고 활동하지 않는다. 여러 예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은 기본이거니와 첨단기술을 이용하고 과학과 인문학의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다룬다. 이런 흐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듯하다. ACC레지던스 아티스트인 ‘언해피서킷’도 이러한 신종 예술가들 중 하나다. 그는 사운드 아트, 영상, 인공지능 기술 등을 결합하여 참신한 예술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부터 현재까지 언해피서킷의 전반적인 작업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유년시절에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장래에 SF장르의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유난히 좋아했던 SF영화를 볼 때면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나 인공지능 로봇과 동질감을 느꼈다. 마치 어색한 인간처럼 행동하는 그런 존재들의 처지가 외로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실제로 만화가가 되고자 미술교육을 받았지만,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금속공예를 전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매체와 기술이 발달한 현실에도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통적인 미술교육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에겐 표현의 한계가 없는 언어,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소리나 에너지처럼 물성이 없는 매체를 사용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래서 음악을 독학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전자음악에서 길을 찾았다.

<사진 1> 음반 Title: Just Waiting For A Happy Ending
Genre: Glitch, noise music / Format: Album(CD, Digital) / Release Date: 2014.03.14./ Label: 3rddan Recordings
/ All tracks composed & produced by Unhappy Circuit / Cover artwork & music videos created by Unhappy Circuit





<영상 1> 뮤직비디오 Title: My Happy Valentine
Genre: Glitch, noise music & Stop motion animation / Music & video created by Unhappy Circuit


2013년 언해피서킷은 우연히 노이즈 음악을 접하고 매력을 느꼈다. 문득 자신이 노이즈 같은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섞이기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과 불협화음을 내는 노이즈가 유사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감정을 노이즈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들을 모아 2014년 3월에 1집 음반으로 발표했다. <Just Waiting For A Happy Ending>이 그것이다. 언해피서킷은 이 음반에서 10곡을 선보였고 앨범 자켓도 직접 제작했다(사진1). 창작자로서 ‘원종국’은 이때부터 ‘언해피서킷(Unhappy Circuit)’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는데, 이런 독특한 이름을 짓게 된 이유는 스스로 ‘우울한 감정만을 느끼는 고장난 회로를 가진 기계인간’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음반과 자켓 외에도 그는 뮤직비디오 <My Happy Valentine>을 제작했다. 음악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이 뮤직비디오에는 작가를 닮은 기계인간 언해피서킷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느 날 밤 언해피서킷은 집에서 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도시의 거리를 질주한다. 자전거가 달리는 길은 갑자기 하늘로 이어진다. 수많은 별들로 이어진 환상적인 길을 지나 마침내 기계인간은 어느집 앞에 당도한다. 이어 한 여성이 문을 열고 나타난다. 터질 듯한 심장을 안고 기계인간은 그 여성에게 카세트테잎을 건넨다(영상1). 뮤직비디오의 음악은 차갑고 기계적이지만 진한 우울감과 고독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정서는 그의 앨범 전반에 깔려 있다. 그의 음악은 새로운 사운드를 단순히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방식보다 작가 개인의 감정을 담으려 했다는 점에서 발표 당시 평단의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사진 2> 음반 Title: Dreams
Genre : Ambient, Downtempo / Format : Single(Digital) / Release Date : 2017.07.03. / Label : Unhappy Circuit Studio
Composed & produced by Unhappy Circuit / Music video directed by Unhappy Circuit





<영상 2> 뮤직비디오 Title: Dreams
Executive Producer: Unhappy Circuit / Music: Unhappy Circuit / Dance: Hyeonmi Park(iMMi) / Film: Pi


1집 발표 후 언해피서킷은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다. 즉흥 연주를 시도하고, 포토몽타쥬 기법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1집 앨범과 전혀 다르게 노이즈 없는 음악으로 2016년 9월에 2집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2집 앨범 발표 후 그는 약간 답답함을 느꼈다. 한동안 몰두해온 음악이 재미없다고 생각되었다. 무언가 다른 표현 방식이 필요했다. 우선 이전의 ‘음악적’인 작업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어머니도 이해할 만한 음악을 한 곡 정도는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Dreams>라는 싱글곡이다(사진2). 2017년 7월에 발표된 이 곡은 안무가와 협업하여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었다(영상2). 뮤직비디오에는 텅 빈 지하철역을 배경으로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인간이 등장한다. 자의식을 가진 그 기계인간은 배터리로 활동하지만 스스로 배터리를 제거한다. 배터리를 제거하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계인간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자유롭게 춤을 춘다. 인간이 창조하는 예술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예술은 어떻게 다른가? 과연 미래에도 인간의 예술과 인공지능의 예술 사이에 경계가 있을 것인가? 이 시기부터 언해피서킷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예술과 테크놀로지, 특히 ‘인공지능’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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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작품명: Music of Memories
공모명: 2017년도 젊은 공연예술창작자 인큐베이팅 쇼케이스 / 주최, 주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발표 년도, 장소: 2017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 작품 형식: 모르스 코드를 변환하여 생성한 오디오 비주얼 라이브 퍼포먼스, 20분 / 매체, 기술: Morse code to Midi & Midi to RGB data conversion, Algorithm to generate Midi note scale complexity, 2-channel Projection mapping on two 400-inch screens, 4-channel surround sound system




<영상 3> Music of Memories 아카이브 영상


언해피서킷은 <Dreams>를 발표하며 사고의 전환을 맞이하였다. 그동안 스스로 음악가라고 생각하며 음악이라는 범주 안에서 활동하였지만, 이제 적극적으로 첨단매체를 활용하여 창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자음악과 인공지능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접목시켜 풍부한 표현의 세계를 실험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한 계기가 ACC에서 마련되었다. 언해피서킷은 ‘2017년도 젊은 공연예술창작자 인큐베이팅 쇼케이스 공모’에 선정되어 ACC예술극장에서 오디오 비주얼 라이브 퍼포먼스 <Music of Memories>를 발표하였다(사진3, 영상3). 이 작품은 전신에 사용되는 모르스 부호(Morse Code)와 컴퓨터의 유사성에 착안한 것이 특징이다. 모르스 부호는 사람의 말을 2차원의 점과 선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는 모든 데이터를 0과 1의 이진법으로 처리하는 컴퓨터의 작동 방식과 비슷하다. 즉 모르스 부호와 컴퓨터는 인간의 언어를 디지털화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유사성을 이용하여 사람의 말을 모르스 부호화해서 단순한 음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단순한 음들은 프로그래밍이 된 알고리즘에 의해 점점 복잡한 구조의 음악으로 변해간다. 동시에 이 소리의 데이터를 시각화하여 영상으로도 보여준다. 즉 인간의 언어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다시 영상으로 번역되는 셈이다. 인간의 기억과 데이터로 처리되는 컴퓨터의 기억과정을 유비적으로 그려내는 이 작품에는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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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작품명: i Remember
공모명: 2018년도 융복합 무대기술을 활용한 공연예술 Art & Technology / 주최, 주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한양대학교 주관
발표 년도, 장소: 2019년, 플랫폼엘 / 작품 형태: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오디오 비주얼 라이브 퍼포먼스, 20분 / 매체, 기술: Visual: Deep Convolutional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DCGAN), Sound: Deep Neural Audio Style Transfer




<영상 4> i Remember 아카이브 영상


<Music of Memories>에 이어 2019년 2월에 발표한 <i Remember> 역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작품이다(사진4, 영상4). 이 작품은 ‘과연 인간의 기억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인간에게 기억이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억을 토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해피서킷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경험이 기억된다면 그 경험의 순간이 지닌 모종의 특성이 기억에 녹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기억은 복사와 전송이 가능한 객관적인 정보나 자료 같은 것일까? 만약 기억이 단순한 데이터에 불과하다면, 나의 기억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나와 같은 존재일까? 나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어떤 존재라고 불러야할까?”

이 작업을 위해 언해피서킷은 평소 핸드폰으로 촬영한 영상 이미지를 사용했다. 현대인에게 핸드폰이란 어쩌면 확장된 뇌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항상 지니고 다니는 개인 기억장치 같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핸드폰에 들어있는 특정한 디지털 개인 정보를 인공지능에게 학습시켰다. 그 정보는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기억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그것은 언해피서킷이 어머니를 기억하는 영상이기도 했다. 이런 데이터를 가지고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주요 개념이다. 인공지능이 원본 영상의 특징을 거듭 학습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은 4000장에 달하는 새로운 이미지와 사운드다. 그야말로 인공지능적인 기억의 산물이다. <i Remember>를 보면 초반부터 인공지능이 학습한 이미지와 사운드가 등장하는데 노이즈가 많아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약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지와 사운드는 점차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가 노래하는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i Remember>는 이처럼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성찰하게 만든다. 특히 컴퓨터가 학습을 통해 기억을 합성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은 어떤 과정을 통해 기억을 하게 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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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작품명: Learning About Humanity
공모명: 2019 년도 상반기 ‘ACC_R Creators in Lab’ 국제 레지던시 / 공모 주제: Food & Technology / 주최 주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ISEA 2019 / 발표 년도, 장소: 2019 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 3 관(6 월 ACT Festival) / 작품 형태: 인공신경망이 생성한 음식 레시피를 요리하는 퍼포먼스와 인공신경망이 학습하는 과정 오디오-비주얼라이제이션, 5.4x3m 스크린에 2채널 프로젝션 맵핑, 4채널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 20분


언해피서킷은 현재 ACC에 머무르며 6월 22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되는 ACT 페스티벌 2019에 선보일 작품을 제작 중이다. 이번 ACT페스티벌의 주제는 ‘음식과 기술’이기 때문에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음식 관련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언해피서킷은 인공지능에게 육식과 관련된 조리법을 학습시킨 다음 인공지능이 새로운 조리법을 만들어내도록 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 조리법을 가지고 실제로 요리 퍼포먼스를 펼친 후 관객들에게 음식을 나눠줄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도 인공지능이 조리법을 학습하며 만들어내는 영상과 소리를 함께 보여주게 된다. 언해피서킷은 이 작품을 통해 대량으로 고기가 공급되는 시대를 통찰하며 공장화된 가축 사육 환경과 도축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윤리적인 행태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새로운 고기요리는 결국 인간의 육식 문화를 은유함과 동시에 인간성의 문제를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한편으로 언해피서킷은 최근 아트센터 나비의 공모에 당선되어 또 다른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인공신경망을 통해 돌고래의 음성과 인간의 음악을 결합시켜서 돌고래와 사람이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돌고래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세계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언해피서킷은 과학기술과 예술은 인류의 공존, 나아가 인류와 자연의 공존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관을 바탕으로 그는 과학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풍경을 끊임없이 상상한다. 동시에 그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멈추지 않는다. 점점 확장되고 있는 언해피서킷의 독특한 상상력이 넓은 세상에 활짝 펼쳐지길 바란다.



  • . 백종옥 icezug@hanmail.net
  • 사진. 언해피서킷(원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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