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야르의 노래

낯선 이방인과 친구가 되는 법

어린이문화



얼마 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의 학부모 독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독서 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1, 2학년 교실에 들어가 책을 읽어주는데 그날은 다음 달에 읽어 줄 동화책을 고르는 날이었다. 그런데 책이 선정되는 과정에서 어떤 책은 너무 슬프다는 이유로, 또 어떤 책은 주제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제외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가장 무난하고 모두가 알법한 평범한(?) 책이 선정되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따로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그리고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에게 죽음이나 삶, 갈등이나 경계, 상처나 아픔에 관한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미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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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웹진에서는 지난 6월 15~16일 어린이극장에서 공연된 어린이창작극 ‘보이야르의 노래’를 다룬다. 보이야르의 노래는 2018 ACC 어린이공연 창작지원사업의 일환(어린이공연 창작지원사업과 관련해서는 2018년 11월 웹진 ‘무대 속 상상의 세계로’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혹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겠다)으로 만들어진 5개의 작품 중 하나이다. 다른 4개의 작품이 아시아의 이야기. 즉 각국의 전래동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보이야르의 노래는 미얀마 로힝야의 난민 소녀 이야기를 주제로 만들어진 창작극이다.

아레. 보이야레. 오라이. 니기요이
바람이 부는 곳으로 나는 갑니다.
- ‘보이야르의 노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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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주인공인 방글라데시 소녀 ‘리아’는 자신의 삶의 공간에 갑작스레 나타난 미얀마 로힝야의 난민 소녀, ‘쿠시’와 만나게 된다. 쿠시는 전쟁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왔으며 리아가 소중히 여기던 망고나무 ‘고고’를 벤 자리에 천막집을 짓고 다가온 침입자이자 이방인이다. 그런 쿠시와 리아는 어른들의 복잡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점차 친구가 되어 간다. 이들이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은 우리 사회에서 난민 혹은 이방인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전쟁을 피해 바람처럼 다가온 이방인과 친구가 되고 삶의 터전을 공유해 나가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필연처럼 갈등이 뒤따른다. 물론 연극에서는 여러 갈등을 겪은 리아와 쿠시가 화해하고 쿠시가 천막집 근처에서 발견한 망고나무 씨앗을 둘이 하나씩 나눠 갖은 뒤 다시 망고나무 씨앗을 심는 것으로 삶의 공간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는 이상적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난민의 문제, 이주민 혹은 외국인 노동자와의 갈등이 우리가 실제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그다지 이상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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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다양한 오브제들의 활용과 음악극이라는 점이다. 쿠시와 리아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안 인형, 투명수조, 각종 주방용품 등이 활용되며 플롯, 건반, 리코더, 타악기 등 다양한 악기들을 활용한 음악이 배경음으로 혹은 주요한 소도구로 사용된다. 한 예로 리아가 자신들의 가족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리아의 집에 걸려있던 주전자, 냄비뚜껑, 국자 등등은 리아의 가족들을 소개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리아는 가족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직접 보여주거나 배우들이 나와서 소개하는 방식이 아닌 각각의 주방용품을 한 번씩 쾅쾅 때림으로써 아빠, 엄마, 오빠를 소개한다. 이러한 방식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어린이들이 다양한 물건들을 활용해 역할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또한 몬순이 와서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는 장면에서는 보다 다양한 악기들을 배경음으로 활용하여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부는 모습을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어린이 관객들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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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아직 어리다고 세상의 다양한 문제와 갈등들, 혹은 죽음이나 슬픔 같은 주제는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면 안 되는 것일까? 솔직히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아이들이 세상의 다양한 아픔과 아득한 갈등들에 대해 무지한 어른으로 자라나길 바라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좀 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어린이들과 공유하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린이들과 나누지 못할 이야기는 없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눌 수 있는지가 문제인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시아의 다양한 이야기를 어린이극으로 만드는 ACC 어린이공연 창작지원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다양성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자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제에 대한 경계는 없어야 하되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선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겠다. 암튼 ‘보이야르의 노래’를 통해 우리는 어린이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더 추가되었음이 명백해졌다.



‘보이야르의 노래’ 이영숙 연출가와 미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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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올리브와 찐콩, 이영숙 연출가

Q. 보이야르의 노래를 보고 오래전에 보았던 「우리들」이란 영화가 떠올랐는데요. ‘보이야르의 노래’ 에서 낯선 이방인 소녀와 친구가 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작년 ACC 어린이공연 창작지원사업에 뮤지션 두 명이 기획제안을 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은 실제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NGO 활동을 하던 친구였고, 다른 한 명은 광주 출신의 작곡자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이러한 주제로 음악극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해서 들어왔고요. 이 두 아티스트가 연극 쪽은 잘 모르는 분들이라 지원사업의 기획팀에서 저에게 연출을 제안하며 함께 콜라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로힝야 난민에 관한 이야기는 멀찌감치서만 알고 있다가 이번 작품을 계기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구요. 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협업을 하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Q. 이번 ACC 어린이극 창작지원사업에서 만들어진 작품 중 유일하게 원작이 없는 창작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조금은 어려운 주제로 어린이극을 만드는 데 있어 어떤 점을 가장 고민하셨나요?

A. 사실은 그림책 원작이 있는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실제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잖아요.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최근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이기도 하거든요. 2017년도에. 그렇기 때문에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그것도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었고요.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우리 아이들이 왜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혹은 봐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연극의 제목이 참 인상 깊은데요. ‘보이야르의 노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A. ‘보이야르’는 로힝야족 언어로 ‘바람’이라는 뜻인데요. 이 바람이라는 언어가 난민을 상징하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바람이라고 하면 굉장히 낭만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은 자신의 고향과 터전을 잃고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불안한 상황 속에 처한 난민을 상징하는 의미로 바람을 사용했어요. 한국어로 ‘바람’이라고 쓰지 않고 로힝야어를 사용해 ‘보이야르’라고 쓴 것은 난민들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다 씀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예술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열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썼던 거고요. 또 하나의 다른 의미는 이 연극을 하는 우리가 로힝야나 방글라데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아티스트 혹은 이야기꾼으로서의 ‘바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Q. 난민 소녀의 이야기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어린이극으로 어떻게 풀었을까 저도 굉장히 궁금해하며 관람했던 것 같은데요. 어린이극을 만들며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어린이극은 어떤 주제든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제 유년시절을 좀 생각해보면 전 굉장히 모범생으로 자라다 보니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서 잘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또 알 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어른들도 항상 좋은 거, 밝은 거, 이상적인 것들만 보여주려고 하고 애써 외면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고요. 제가 연극을 하게 된 이유가 내가 세상을 좀 더 경험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고, 그것들을 내 안으로 내재화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욕구들이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가끔 내가 어렸을 적에 그런 이야기들을 좀 더 만나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요.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린이들이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어른들은 그런 것들을 말해야 할 책임, 혹은 알게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우리나라도 굉장히 다양한 이슈가 많은데 그 이슈들을 어느 연령대에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사실 연령대의 기준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 지점에서 예술가가 어떻게 형식을 찾고 들려줄 것인가를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연극에 관심이 많은 ACC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요즘은 핸드폰이나 굉장히 자극적인 것들이 많은데요. 연극은 정말로 원형적인 예술이기 때문에 주의 깊게 몰입하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들리고 보이는 예술이거든요. 연극을 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감각을 많이 열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자연에서 들리는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주의 깊게 관찰해서 볼 수 있는 눈,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심장, 온 몸의 감각들을 다시 한번 열고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 문진영 moongaka@naver.com
  •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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