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의 축제 나담

한 여름의 꿈-축제는 계속된다

아시아문화연구소


나담은 몽골어로 놀이(경기) 또는 축제를 의미한다. 이 말은 곧 놀이가 축제라는 뜻이다. 실제로 나담에서는 세 가지 놀이(경기)가 벌어진다. 이를 에링 고르왕 나담(남자의 3종 경기)이라 한다. 물론 오늘날에는 씨름만 빼고 두 종목에 여자도 참가한다. 따라서 엄밀하게 따지자면 에링 고르왕 나담은 모순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상황일 뿐 나담은 원래 남자들이 힘과 기예를 겨루는 축제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담하면 보통 에링 고르왕 나담이라 한다.

이미지 설명
3종 경기의 하이라이트 말 경주


남자의 3종 경기는 몽골인의 전통생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렵과 유목목축을 기반으로 하는 몽골 유목민들의 삶 속에서 말 타기와 활쏘기 기술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자 생활의 전제조건 이었다. 그래서 몽골 유목민들은 활쏘기와 말타기 능력을 익히고 연마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으며, 종교의례나 경축일 등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평소에 익힌 기예를 선보이는 시합을 했다. 말타기와 활쏘기 능력은 이처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

이미지 설명
건장한 나담장의 씨름꾼들


씨름도 마찬가지다. 몽골의 거친 대지와 혹독한 자연환경은 그 자체가 커다란 시련이었다. 여기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힘이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사냥과 전쟁에서도 무엇보다도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씨름시합을 벌여 평소에 닦은 실력을 겨루고 시험했다. 이런 점에서 씨름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기르고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나담은 몽골인들의 삶의 과정이 여과 없이 반영된 놀이문화다. 그런 이유로 나담 경기의 각 종목과 거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행위 속에는 민속과 몽골인의 신앙의식이 응축되어 있다. 심지어 옛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선행의 신과 악마의 싸움도 마지막에는 말달리기, 활쏘기, 씨름 등 3종 경기 또는 그중 어느 하나를 통하여 해결을 본다.

이미지 설명
식전 행사에 등장한 옛 몽골군


예를 들면 몽골 구전설화에 등장하는 하늘로 올라가 북두칠성이 된 착한 형제들이 샤즈가이 칸(까치대왕)이라는 사악한 왕의 부하들과 대결할 때도 활쏘기와 씨름으로 승부를 내고, 또 다른 북두칠성 이야기에 나오는 알하이 메르겡과 고낭 사르 형제가 망가스 대왕이라는 악마와 싸울 때도 3종 경기가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나담은 몽골 유목민들이 이룩한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고, 지금까지 나담이 몽골인들의 가장 큰 축제로 계승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어디에 있든 나담을 기억하고 여름이 오면 어떤 식으로든 나담을 즐긴다. 몽골족의 영원한 고향 몽골국(속칭 외몽골)은 물론, 중국의 네이멍구자치구(속칭 내몽골)와 바이칼 호 주변의 부랴트공화국 등 몽골족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나담이 열린다. 외국에 있는 사람도 나담을 지내기 위하여 귀국하고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나담에 맞추어 고향을 찾는다. 심지어 남의 나라 땅에서도 나담을 즐긴다. 돈벌이를 위하여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 사람들(2016년 말 현재 35,206명)도 사회단체의 주선으로 해마다 나담을 열고, 베이징에 거주하는 몽골족 역시 2년에 한 번씩 나담을 개최한다. 이들은 나담을 통하여 보고픈 고향 산천을 생각하고,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몽골인임을 거듭 확인하고, 현대문명의 그림자에 억눌려 사라져가는 옛 전통을 이어간다.

이미지 설명
말 총기를 들고 행진하는 옛 몽골군


나담은 전국적으로, 그리고 보통 유제품이 풍부한 여름철에 열린다. 몽골국의 경우 7월 11~13일 사이에 전국적으로 동시에 열린다. 물론 같은 몽골국 내에서도 지방에 따라 다른 시기에 열리는 경우도 있다. 지방 나담 중 부랴트인(이들은 20세기 초기에 바이칼 호 주변에서 몽골로 이주해 왔다)이 많이 사는 몽골국 도르노드 아이막(道)과 카자흐족이 많이 사는 바얀-울기 아이막의 나담이 유명하다. 이들은 규모는 작지만 그 지방 특유의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또한 몽골국을 주도하는 거대한 집단, 즉 할하족(현재 몽골국 인구의 대다수를 전하는 집단 또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 속에서 자기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단합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미지 설명
나담장 주변 풍경


나담은 말 그대로 먹고 마시고 노는 축제다. 겨울의 명절인 차강 사르(음력 정월 초하루)가 상대적으로 정적이라고 한다면 나담은 동적이고 활력이 넘친다. 무엇보다 날씨가 좋아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겨울이 길고 추운 몽골에서 6~8월은 그야말로 황금계절이다. 햇볕은 뜨겁지만 모자만 쓰면 금방 서늘해진다. 여름은 또한 대자연의 선물인 유제품이 풍부한 계절이기도 하다. 유목민은 유목민대로 행복하고 도시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대로 행복한 시절이 바로 이때다.

겨우 내내 외지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유목민 천막에 낯선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도 여름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반드시 외국인이 찾아온다. 관광회사와 상인들은 여름만 되면 바쁘다. 언뜻 보면 해수욕장 같은 분위기다.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상황이 그렇다. 이래저래 행복한 시절의 가운데 달(7월) 중순에 나담이 열린다.

이미지 설명
무당들의 식전행사


나담은 오랜 역사과정에서 변화 발전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종 경기가 벌어지는 에링 고르왕 나담은 물론이고 여자까지 참여하는 나담도 똑같이 역사의 산물이다.




  • 글 / 사진. 이평래 pyungrae56@hanmail.net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전공, 몽골 현대사, 몽골의 종교와 신화 및 유목문화
    저서, 《북방 유라시아 제사 고고학의 현황과 과제》(2018), 《아시아의 죽음 문화》(2010, 공저)
    역서, 《몽골 신화의 형상》(2007) 등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