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을 기억하는 법

열흘의 시간 속에서 현재를 생각하다

이슈&뷰

역사의 기억이 저장된 곳



누군가에게는 아픔이고 분노,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자 그리움, 또 누군가에게는 참담하고도 뼈저린 사무침, 그리고 누군가는 거짓과 외면. 그 모두를 뛰어넘어 희망을 갈망하는 우리. 이 모든 것은 1980년 광주의 오월을 상징한다.

1980년 5월의 기억이 저장된 장소, 옛 전남도청. 오월의 따스함이 무참히 짓밟힌 그 곳에서 열리는 전시 <열흘간의 나비떼>는 나비로 상징되는 평범한 시민들이 갑자기 겪게 된 소용돌이 같은 열흘의 시간이 구현된 전시 콘텐츠로, 기·승·전·결의 서사적 구조로 전개된다.

2019년 5월 14일부터 8월 18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ACC의 민주평화교류원(옛 전남도청 건물)에서 열린다. 올해는 특히 3개월여 동안 개방되는데, 광주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인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기간을 염두에 두고 광주정신을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긴 시간동안 열리게 된다. 옛 전남도청 본관과 경찰국, 경찰국 민원실 등의 공간에서 전시가 이뤄지며, 입체 조형물과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열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양한 미디어 장치를 활용한 간접체험 방식은 관람객을 과거의 시공간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광주’라는 곳, 그 곳으로 들어가는 길



‘광주’라는 시간이 간직된 곳, 도청은 그러한 곳이다. 진실이 될 수 없는 무수한 말들은 아직도 무성하지만, 현장에 남겨진 기억의 실마리와 많은 이들의 뇌리에 새겨진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 민주주의를 꿈꿨던 완전한 시간으로 남겨질 수 있으리라.

<열흘간의 나비떼>는 역사의 시간을 간직한 옛 도청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킨다. 1980년부터 2019년까지 39년의 시공간은 서로 교감을 허하며, #1. 광주로 가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옛 전남도청에 남겨진 상흔



1980년 5월, 도청 앞 분수대의 집회도 있었고, 시민이 탄 버스와 군인의 장갑차가 서로 대치하기도 했다. 금남로에 울려 퍼지던 총성, 무수한 시민의 목숨이 사라져간 시간과 공간. 시간은 흘러갔을지라도 공간은 기억을 지우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억은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증명해간다.

옛 전라남도 경찰국 본관에는 전시의 시작인 #1부터 #8까지의 서사가 담겼다. 관람자의 발걸음을 따라 남도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1. 광주로 가는 길에는 근대 100여 년이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2. 5월엔 만인의 얼굴이 눈부시다로 들어서면 건물의 3개 층을 관통하는 미디어조형물이 환하게 맞이한다. 광주의 사람들과 국내외를 망라하고 광주를 찾은 사람들의 미소가 가득이다. 천천히 마주하게 되는 얼굴은 어쩌면 우리 모두는 ‘광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3. 봉인된 시간 1979-1980.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물이 끝없이 흘러간다. 미디어영상이 비춰진 전면의 벽에서 시작된 물길은 바닥으로 그리고 왼쪽으로 순환을 이어간다. 물길은 역사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이들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4. 빛의 정거장으로 들어선다. 둥둥 북소리가 울리며 횃불을 든 사람이 벽면에 등장한다. 하나 둘 횃불을 든 사람들은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날, 광주의 함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5월 16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횃불 성회로 5.18의 서막을 알린 상황은 수많은 군중의 함성을 타고 울려 퍼졌다. #5. 광주를 지나간 시간 : 5월 18일 –27일. 10일간의 처참한 이야기는 당시 경험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참히 짓밟힌 시간을 증명하는 사진들,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은 뼈아픈 광주의 5월이다. #6. 일요일의 아우성. 커다란 스피커더미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5월 18일 시민의 일상에 파고든 참혹한 사건은 아우성이 되어 온 광주에 울려 퍼졌다. 당시 격분된 마음이 외쳤던 것처럼 스피커 너머 마이크에 다시금 함성을 외쳐볼 수 있다. #7. 20일 화요일 저녁의 헤드라이트. 금남로 앞 차량 시위, 양쪽 벽엔 버스와 장갑차가 대치하고 있다.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무섭게 울려 퍼지는 경적소리는 그날의 긴장감을 그대로 전달한다. #8. 21일 13시 0분의 애국가. 21일 금남로에서 자행된 집단발포. 무려 30만 명.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도시 인구 전체가 거의 빠짐없이 시위에 참가한 유례없는 장관을 연출했던 시간. 시민대표와 공수부대의 협상 결렬에 집단 발포는 감행되었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뜨거운 빛 속에서 무수한 생명이 사라져갔다. 이 공간은 <열흘간의 나비떼> 전시컨텐츠를 강하게 상징한다. 밀랍으로 만들어진 인간군상의 조형물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눈부신 빛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진격하는 군상들은 80년 5월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던 시민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다. 옛 전라남도 경찰국의 전시는 여기까지이다.

총 8개의 서사는 시간 순으로 구성되었다. 많은 증언기록과 사진, 그리고 인터렉티브 형식으로 구축된 미디어 컨텐츠는 관람자의 오감각을 자극하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이미지 설명
이미지 설명

광주여 영원하라, 금남로에 쏟아지던 빛



두 번째 건물, 옛 전라남도 경찰국 민원실로 공간이 이어진다. 2층의 내부가 뻥 뚫린 공간. 금남로의 길을 재현한 이곳의 천정은 조금 특별하다. 허공에 떠 있는 무수한 하얀 운동화들은 제대로 신발을 신지도 못하고 내달리던 이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공간 내부를 메운 외부의 빛. 노후된 지붕의 기와가 놓여있던 자리 사이사이에 유리를 설치하여 외부의 빛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따스한 빛을 품은 내부에 울려 퍼지는 음악.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하라’는 단 한차례의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던 무정부도시의 열흘,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간의 환희를 담아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이미지 설명

최후의 날, 새로이 써나갈 민주주의의 역사



다시 전시는 전남도청 본관으로 이어진다. 5월27일 새벽, 시민군 최후 항쟁의 목소리와 디지털 방명록 등 사건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일부 관람이 제한된 곳도 있지만, 상황실의 흔적 등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사진과 기록을 세세하게 볼 수 있다. 3층에 위치한 빛의 시작 : 6일간의 공간에 들어서면 미디어 월과 마주하는 공간이 있다. 관람객을 인지한 센서는 날갯짓을 유도하며, 두 팔을 들어 올리면 이내 날개가 펼쳐진다. 열흘간의 흔적을 따라 마지막 공간에서 비로소 자유로운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열흘간의 나비떼, 사라져간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채 치유되지 않은 분노와 아픔을 어떻게 보듬어줄 수 있을까. 전시는 더 밝은 세상을 향했던 이들의 숭고한 마음을 깊이 되새긴다.

우리 모두가 역사의 진실을 오롯이 기억하는 것, 39년 전 오월의 시간을 되짚으며 현재의 우리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것, 바로 <열흘간의 나비떼>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지 설명




  • . 문희영 moonhy19@naver.com
  • 사진. acc제공

    글의 소제목 #1~9는 전시의 소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며,
    이 글은 전시가 구성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쓰여졌다.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