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고전음악감상실

도심 한복판에서 만난 뜻밖의 낭만

광주초이스

7,80년대 청년문화의 플랫폼, 고전음악감상실
새로운 복고 뉴트로의 감성을 깨우다



지난 시절, 흘러간 이야기가 다시 찾아오고 있다. 단순히 옛 것이 아닌 현대와 교유하며 또 다른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복고 ‘뉴트로’(NEW + RETRO)의 감성으로. ACC ‘커피사회’ 전시회에서 이미 잊힌 줄 알았던 광주의 다방문화를 소환했고, 효력을 상실한 줄 알았던 과거의 문화는 여전히 유효한 추억으로 살아났다. 추억 혹은 낭만이라 부를 수 있을 ‘그때 그 시절’의 문화, 그 한 축에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고전음악감상실이다. 7~80년대 다방이 문학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면 음악감상실은 거기에 ‘음악’이라는 매개체가 더해진 한층 품격 있는 청년문화의 플랫폼이었다. 한때 음악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했던 청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홀로 때로는 같이 음악에 취했을 그곳이 아닐는지... 집집마다 개인 전축이 갖춰지고 mp3, 핸드폰 등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어느새 음악감상실이라는 그 이름마저 낯설어진 요즘. 거기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는 음악감상실이 있다면 어떨까.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처럼 언제나 우리에게 손짓하며 그 자리를 지켜온 곳이 있다면... 아마도 잃어버린 고향을 찾은 듯 놀랍고 반갑고 고마울 것 같다. 광주 금남로 한복판에 자리한 ‘베토벤 고전음악감상실(이하 베토벤)’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 그와 같았다. 요즘같이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사라지는 세상에 이런 곳이 남아있다는데 대한 놀라움, 지켜와 준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새로운 낭만을 만난 반가움이었다. 이다지도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 고전음악감상실이라니... 조금은 비현실적인 느낌도 있었다.

1982년 오월에 문을 연 베토벤 음악감상실
37년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추억의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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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입구 오른편의 목각 현판이었다. ‘베토벤. 1982년 오월~’ 이 짧은 글귀에서 많은 것들이 짐작이 되었다. 82년 오월, 그 엄혹한 시절에 문을 연 고전음악감상실 베토벤. 80년대 광주와 클래식 음악이 잘 연결되지 않지만 어쩌면 그다지도 모진 시절이었기에 더 음악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세월을 거슬러 오른 듯 정겹고 오래된 풍경이 반겨온다. 윤이 나고 삐걱거리는 나무 마룻바닥, 한쪽 벽을 가득 채운 LP판, 낡은 축음기, 낮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 그리고 그때 그 주인장까지... 마주하는 모든 풍경들에 미간이 순해지는 느낌이다. 무려 37년 세월, 모든 것들이 변해가는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정옥(베토벤 고전음악감상실 지기)

“어느새 그렇게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는지... 지금 생각해도 엊그제 같고 순식간에 그 긴 세월이 반짝 지나간 것 같아요. 처음에 베토벤이 82년에 문을 열었는데 그때는 저도 단골손님으로 자주 찾다가, 제가 1987년에 인수를 했거든요. 친구와 같이 시작했었는데 그 친구는 떠나고 저는 남았죠. 그렇게 30년 세월을 설날만 빼고 하루도 빠짐없이 문을 열었어요.”

쏜 화살처럼 지나간 30여년 세월. 꽃다웠던 30대의 주인장은 어느새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가 되었고, 베토벤을 찾던 그때 그 청춘들도 나이 지긋한 중장년이 되었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나이 들었지만 옛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는 음악감상실 베토벤. 변한 게 있다면 혈기왕성하던 청춘들의 문화 플랫폼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중장년층의 사랑방이 되었다는 점이다. 베토벤을 찾은 주말 늦은 오후,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하나 둘 설레는 표정의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진행되는 고전음악 감상회에 참여하는 회원들로 모두 음악을 사랑하고 베토벤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고전음악 애호가인 안철 선생님이 10여 년째 재능기부로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었다. 핸드폰만 잡으면 어디서든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숱한 대중가요가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요즘, 베토벤이라는 고전음악감상실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이 시간에 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 감상하는 음악, 생명력이 짧은 대중가요가 아닌 오랜 세월 이어져온 클래식 음악의 힘이야말로 베토벤의 뿌리이자 토양이다.


안철(고전음악 해설가. 전 금호고 교사)

“재산이나 물질은 나누면 작아지잖아요. 그런데 음악은 둘이 나누면 즐거움이 두 배로 커지고 열이 나누면 열 배로 그 즐거움이 커져요. 나누었을 때 작아지지 않고 그 기쁨이 더 커지는 것이 저는 음악과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듣는 음악도 즐겁겠지만, 음악을 함께 듣고 그 느낌을 나눌 때야말로 음악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클래식음악을 화초나 동물들에게 들려줬을 때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실험결과가 있잖아요.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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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운영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서
100여명 회원들의 힘으로 다시 살아난 베토벤



안철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베토벤과 함께 하게 된 때는 베토벤이 운영난으로 곧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을 시기였다. 2000년대 들어 손님은 점점 줄어들고 가게의 월세는 올라가자 더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때... 가장 먼저 나선 이들이 바로 베토벤을 찾던 손님들이었다. 단골손님 몇몇이 주도해서 일명 ‘음악감상실 베토벤을 살리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고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안철 선생님의 제안으로 다양한 음악 감상 프로그램도 꾸려졌다. 그렇게 해서 한 해 두 해 고비를 넘겨왔다. 주인장 못지않게 베토벤을 사랑했던 손님들이 바로 긴 세월 베토벤을 지켜온 원동력이었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정옥(베토벤 고전음악감상실 지기)

“그때 당시 100여명 가까이 회원이 되어주셔서 2년 동안 월세를 낼 수 있었어요. 떠나야 되느냐 남아야 되느냐의 갈림길에서 베토벤을 지켜주신 거죠.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들이 정말 많아요. 나중에는 다행스럽게도 건물 주인분이 월세를 전세로 돌려주셔서 지금까지 유지해 올 수 있었어요. 베토벤의 진짜 주인은 제가 아니라 그동안 베토벤을 아껴주신 많은 분들인 것 같아요.”

베토벤 음악감상실도 한때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시절이 있었다. 최루가스를 날리고 거리마다 함성과 구호가 울려 퍼지던 시절, 시대는 혹독했지만 베토벤에는 낭만이 있고 열정이 있었다. 그때 최루가스를 피해 베토벤으로 숨어들던 젊은이들에게 이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휴식처는 없었다. 어떤 이에게는 가슴 아린 추억으로, 어떤 이에게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겨져 있을 고전음악감상실 베토벤. 그 긴 세월 베토벤을 지켜봐온 사람은 비단 주인장만이 아니다. 베토벤과 함께 인생길을 걸어온 오랜 손님들은 베토벤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그 중 여대생 시절부터 인연을 함께 해온 김문자 할머니는 자타공인 베토벤의 산증인이다. 심지어 베토벤에 대한 자작시까지 지었을 정도다.



베토벤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 곳.
그곳에 가면 초가지붕 박꽃 같은 주인장이 있다.
좀 슬은 나무기둥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의자들은 힘겹다고 아우성이다.
나는 오늘도 베토벤에 간다.
내 영혼을 쉬러...
- 김문자 (베토벤 원년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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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온 베토벤 음악감상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복고풍(Retro)과 새로운 복고(Newtro)라는 트렌드를 만나 베토벤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듯하다. 최근 지역 방송에도 소개되어 나름 입소문이 나는 중이다. 구세대의 추억으로 여겨지던 고전음악감상실이 요즘을 사는 젊은 세대의 감성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한 번도 레트로나 뉴트로를 염두에 둔적이 없지만 세월의 힘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새것, 화려하고 값비싼 것이 아닌 낡고 손때 묻은 오래된 것. 긴 세월 함께 해온 사람들이 있는 그 곳. 베토벤은 더 이상 구시대의 유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문화자산이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뜻밖에 낭만을 건네 오는 고전음악감상실 베토벤을 나서면서 나에게 묻게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낭만은 어디에 있을까.

이정옥(베토벤 고전음악감상실 지기)

“카라얀은 우리에게 ‘음악은 호흡하는 공기와 같고 우리가 마시는 물과 같다’라고 말했는데 음악은 정말 삶에 필요한 묘약입니다. 모든 분들이 음악을 통해서 정서적인 안정과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지켜나가야지요.”




베토벤 고전음악감상실
광주 동구 금남로 250-8번지 6층
062-222-8410
매주 수요일 오전10시15분 - 오페라 발레 음악 감상회
매주 토요일 오후3시 - 고전영상음악 감상회





  • . 유연희 heyjeje@naver.com
  •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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