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에서의 한류현상

주몽의 나라에서 BTS의 나라로

아시아문화연구소




거리마다 주몽 역할을 했던 배우 송일국과 여자 주인공 소서노 역할을 맡았던 배우 한혜진이 이란 거리의 가판대를 점령할 정도로 이란에서 주몽의 인기는 선풍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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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잡지의 표지모델인 된 드라마 <주몽> 배우들(ⓒ 2016 구기연)


그렇다면 이란에서 드라마 <주몽>을 비롯한 한국의 사극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구기연 2014)


첫째, 문화의 유사성

<주몽>의 이야기는 이란의 대표적인 문화심리적 특성이라 불리는 ‘영웅주의’와 유사하다. 영웅주의는 고대 페르시아 문학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몽’이라는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주몽은 이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진다. 다시 말해, 한국의 주몽 신화는 이란의 전통적인 종교적, 신화적 사상과 그 맥을 같이 한다. 2012년 이란 국영방송국 IRIB 채널 3번에서 방영된 MBC 드라마 <동이> 역시 이러한 영웅 신화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대장금>과 <주몽>, <동이> 그리고 최근의 <수백향>과 <정도전>에 이르기까지 역사 드라마이자 영웅 신화 드라마가 이란의 ‘영웅주의’라는 문화적 요소와 부합되면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선과 악에 대한 이원론과의 연결점

선과 악의 뚜렷한 구분과 선이 승리한다는 주몽을 비롯한 한국 사극의 플롯은 이란 사회에서도 쉽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요인이다. 드라마 주몽 열풍 당시, 이란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독재자들을 극 중의 악역인 ‘대소’라고 부르고, 이란의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주몽’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이란 사회에서 ‘영웅 대 적’에 관한 신화는 시아 이슬람을 순니 이슬람과 구별해 내고 국가주의를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해 왔다.


셋째, 가치관의 유사성

한국 사극의 가치관과 이슬람 사상과 이란 전통적인 가치관의 유사성이다. 이란과 한국 사이의 문화적 유사성은 더욱 많은 이란 청취자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분석된다. 또한 한국 드라마(주로 사극)의 주인공이 개인보다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이슬람 사상과 가까운 전통적인 유교 가치관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가진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란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 원인을 이야기할 때 ‘보다 이슬람적이다’라는 흥미로운 답변이 나오기도 한다.


넷째, 이란 미디어 환경의 특성

이란 국영방송에서 방영된 <주몽>을 비롯한 한국 사극의 선풍적인 인기에는 이란 미디어 환경의 특성도 원인이 된다. 이란에서의 위성 채널을 볼 수 있는 미디어 설치는 불법이므로, 실제로 공무원들이나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대외적으로 국영방송 밖에 시청할 수 없다.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든 위성 수신 접시를 달 수 없는 사람들에게 국영방송은 유일한 여가 거리가 되는 것이다. <주몽> 열풍 당시 이란에서는 텔레비전 시청이 거의 유일한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정도로 즐길 거리가 한정되어 있었다. <주몽>의 시청률이 높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란 미디어의 구조적 특징과도 맞닿아 있다. 스마트폰 보급과 광통신망 도입 이래 이란의 미디어 환경 역시 변화하였지만, 시아 종주국이라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여전히 여가 거리가 다양하지 않다.
이란에서 한류 열풍의 문을 한국 드라마가 열었다면, 2012, 3년 이후 본격화된 스마트폰의 등장과 소셜 미디어 발전과 함께 새로운 한류의 붐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K-pop이다. 한국 드라마 열풍이 잠시 식은 틈을 K-pop 인기가 그 간극을 메꾸고 있는 것이다. 2019년 현재 이란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방탄소년단(BTS), 엑소(EXO), 샤이니 등의 팬클럽들이나 현대 드라마 등 한류 문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주로 이들의 활동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란에서 활발한 소셜 미디어 활동은 상대적으로 다소 닫혀있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각 연예인들의 인스타그램 팬페이지에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에 관련된 소식과 사진들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한편, ‘텔레그램’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보다 면밀한 ‘팬질’을 관찰 할 수 있는데, 이 곳에서 귀한 ‘굿즈’ 판매가 이루어지고, 팬클럽 리더를 중심으로 오프라인 모임이 주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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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 팬클럽 회장, BTS 팬클럽 회장, 한류팬과의 만남(ⓒ 2016 구기연)


오프라인에서는 보통 30명에서 최대 200명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의 생일파티나 음반발매 기념 모임을 하는 등 이란 팬들의 팬 활동은 다른 어떤 중동 지역보다 활발하며 적극적이다. 그들에게 오프모임은 하나의 대중문화 소비 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앞서 한국 사극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인 부족한 유흥과 여가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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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엑소 오프라인 모임( ⓒ 2016 구기연)


한국 드라마에서 K-pop으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한류 주소비자가 중장년층 이상의 연령층에서 10, 20대 젊은 층, 특히 젊은 여성으로 이동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2018년 가을,“GEM KOREA”라는 한국 드라마와 가요만을 소개하는 위성미디어 채널의 개국은 이란 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젊은 층의 관심은 한국 대중문화 뿐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증폭된다. 이러한 결과로 수도 테헤란에 몇 년 전 문을 연 세종학당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학생들로 매학기 높은 입학 경쟁률을 기록한다. 세종학당에는 주로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진 젊은 세대들이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란에서 세종학당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란과 한국의 민간교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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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 KOREA TV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emkoreatv/)


이렇듯 한류로 인해 시작된 이란 젊은이들의 관심은 한국어, 한국 문화 전반, 한국 제품 소비 그리고 한국 관광과 유학으로 이어진다. 또한 그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자발적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 여행기 등을 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생소한 한국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그들을 높은 파급력을 가진 문화 전도사라 부를 수 있다. 이란 청년 세대들이 주 문화 소비자가 되면서 앞으로의 이란 내 한국 문화와 경제적 파급력의 전망은 밝다. 이렇듯 이란에서 한국은 주몽의 나라에서 BTS의 나라로 그 궤가 옮겨가고 있으며, 다양한 방향과 흐름의 변화를 맞고 있다. 이들 문화 전도사에 대한 외교적 차원에서의 지원과 한국에서 아직도 낯선 이란 문화에 대한 민간 교류가 좀 더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 . 구기연 kikiki9@snu.ac.kr

  • 2013 서울대학교 인류학 박사 취득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2017)
    『Media in the Middle East: Activism, Politics, and Culture』(2017, 공저)
    『Participation Culture in the Gulf: Networks, Politics and Identity』 (2018, 공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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