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생성하는 신비감과 숭고미






요즘 미술작품들을 보면 갈수록 가벼워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가볍다는 의미에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문제가 모두 포함된다. ‘소.확.행’이 사회적인 경향으로 주목받듯이, 미술에서도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손쉬운 방식으로 표현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특히 편리하고 효과적인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물질적으로 육중한 결과물이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이런 흐름과 달리 매우 진지하고 어려운 작업 과정을 수행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ACC레지던스에서는 정지연 작가를 꼽을 수 있다. 정지연 작가는 지난 2018년 12월 ACC 문화창조원 복합1관에서 거대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물량 공세를 통해 그저 덩치만 키운 작품이 아니었다.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비상하는 날개 같은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작품엔 여러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의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오랫동안 가져온 관심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지연 작가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한편으로 미술에서는 음악적 요소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공감각적인 작품에 이끌렸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거치며 점점 진지한 독일의 문학과 예술에 빠져 들었다. 특히 신비감과 숭고미를 강렬하게 내뿜는 독일 낭만주의(romanticism) 대표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풍경화가 정지연 작가를 깊이 매료시켰다. 그후 ‘신비감과 숭고미’는 정지연 작가가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지향점이 되었다.





사진1. 카라트(Karat) - 화학용액, 유리, 아크릴, 전자 장비, 가변설치, 2011




독일을 동경하던 정지연 작가는 쾰른으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11년간 머무르면서 대학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였다. 융합적인 프로젝트형 작업이 가능한 미술학교는 그의 작품세계를 숙성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초기에 그는 주로 비디오 영상과 소리 그리고 퍼포먼스 형식의 작업을 시도했는데, 빛과 소리를 이용한 시간성의 표현과 관객과의 소통 등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생각을 보다 물질적으로 보여주고자 본격적으로 설치작업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가 했던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사진2. 카라트(Karat) - 화학용액, 유리, 아크릴, 전자 장비, 가변설치, 2015




2011년에 제작한 [카라트Karat]는 화학 현상을 이용한 설치작품이다(사진1). 나무 열매처럼 매달린 9개의 유리통들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다. 특별 주문 제작한 유리통 안에 방수처리된 엘이디(LED)가 숨을 쉬듯이 강하거나 약한 빛을 발산한다. 유리통 안에는 다양한 소금계열의 화학 용액과 구리선들이 들어 있다. 이 화학 용액은 혼합방식이나 구리선으로 인한 온도 변화에 따라 점점 딱딱하게 굳어진다. 이렇게 결정이 되어가는 양상이 유리통마다 다르다. 게다가 각 유리통 위쪽에는 빛나는 소리관이 있는데, 거기에서 저주파가 발생하여 결정화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작품 제목인 ‘카라트(Karat)’는 보석의 중량 단위를 가리킨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뿔 형태의 나무 열매 씨앗들을 말린 후 무게를 재기 위한 매개체로 사용하면서 이 단어가 지금까지 계속 쓰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카라트는 씨앗 모양의 유리통을 의미한다. 이 씨앗 모양의 유리통에 작가는 빛을 씨앗처럼 심은 다음 용액, 소리, 온기 등을 이용해 이 유리통의 작은 우주를 성장시켜 나간다. 마치 태초의 심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들이 서서히 눈에 보이는 수정 같은 물질로 드러나는 풍경을 연상시킨다. [카라트]는 유럽과 한국의 전시회에서 여섯 번이나 선보인 작품이다. 매번 전시 환경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어 설치되었다.(사진2)






사진3. 그림자 푸가(Shadow Fugue) - 플랙시 글라스 로드, 황동 파이프, 전자 장비, L200 x W5 x H300 cm, 2012




두번째로 주목할 만한 작품은 [그림자 푸가 Shadow Fugue](2012)이다(사진3). 이 작품에서도 빛과 소리가 작품의 주요 표현언어로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움직임도 더해졌다. 실을 짜는 베틀을 연상시키는 이 설치작품의 중심은 움직이는 투명 유리막대들이다. 작품 위와 아래에는 오르간 형태로 설치된 황동파이프가 있는데, 여기에 긴 유리막대들이 끼워진 채 불규칙적인 높이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그리고 주변엔 모터장치 4개가 설치되어 있고, 이 모터들과 유리막대들 사이에 낚싯줄이 연결되어 있다. 4중주를 하듯이 합창 같은 소리와 함께 4개의 모터들이 회전하면 낚싯줄은 유리막대들을 움직여 조금씩 다른 형태로 구부러지게 만든다. 각각의 유리막대가 벽을 향해 구부러지는 순간 유리막대의 그림자들이 줄무늬 모양으로 생겨나고 동시에 빛을 반사하게 된다. 이 그림자와 빛의 위치는 유리막대의 움직임과 관객의 시점에 따라 조금씩 변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마치 벽 위의 유리막대들이 호흡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제목에 쓰인 ‘푸가(Fugue)’라는 단어는 음악에서 대위법에 쓰이는 악곡 형식을 의미한다. 푸가의 기술 중에 2중 푸가는 대조되는 두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다. 이 설치작품에서 발견되는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은 푸가의 대조적인 형식을 닮았다. 빛과 그림자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림자 푸가]에서 그림자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곳이 아니라 빛이 새롭게 생성되는 지점이다. 그렇게 그림자와 빛은 함께 이어지면서 유리막대라는 물질에 숨을 불어 넣고 있는 셈이다.





사진4. 합생(Concrescence) -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전자 장비, 약 L200 x W200 x H300 cm, 2015




빛과 소리 그리고 움직임은 [합생 Concrescence](2015)에서 더욱 강렬해진다(사진4). 이 작품은 합생(合生)의 의미대로 각각의 물질들이 자신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합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9개의 기다란 스테인레스 강판 조각들이 활짝 피기 전의 꽃봉오리 모양으로 모여 있다. 주변에 설치된 강한 조명 빛이 번쩍거리는 스테인레스의 물성을 극대화시킨다. 강판들의 위쪽에는 2개의 모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하나는 강판 바로 위쪽에서 원운동을 일으키고, 다른 하나는 천장 쪽에서 상하운동을 일으켜 모터와 강판을 연결하는 쇠줄들이 조금씩 다른 긴장감을 가지고 강판을 움직이도록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강판들이 구부러지거나 펴지면서 저마다 독특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이 강판에는 강판의 진동을 감지하고 확대시켜주는 장치가 연결되어 있어서 강판이 커다란 소리를 내도록 돕는다. 그리고 강판마다 레이저로 잘라낸 불규칙한 틈들이 있는데, 그 틈들도 소리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 각 강판에서 발생된 소리들은 소음처럼 들리지만 하나로 뒤섞이면서 묘한 음악이 된다. 소리를 내면서 수축과 이완 운동을 하는 강판들은 사람의 발성 기관이 숨을 쉬며 근육운동을 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이것은 작가가 상상한 이른바 ‘소리-몸체’의 풍경이다. 움직임과 함께 끝없이 음악을 생성시키는 키네틱 사운드 설치작품 [합생]을 통해 정지연 작가는 더 깊은 자신의 작품 세계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사진5. Com•respond - 유리음각, 약 L1000 x W500 x H300 cm, 2016




2016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정지연 작가는 영은미술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이때 발표한 작품이 [Com•respond]이다(사진5). 유리와 드로잉 그리고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Com•respond]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2~3미터 높이로 서 있는 유리들은 끝이 매우 뾰족하여 위험한 느낌을 주는데, 앞에서 언급한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얼음과 바다](1824)를 떠올리게 한다. 그 그림 속의 날카로운 얼음들이 보여주는 자연의 압도적인 풍경은 공포와 신비 그리고 숭고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Com•respond]에는 두께 4밀리미터의 일반 유리와 두께 5밀리미터의 녹색 반사경이 짝을 이루고 서 있다. 얇고 평평한 유리들은 절대 혼자 서 있을 수 없다. 그것들은 병풍처럼 서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설 수 있다. 작품 제목 [Com•respond]은 이러한 상황을 은유하는 것이다. 작품 제목은 정지연 작가가 새롭게 구성한 단어인데, ‘Correspond(상응하다)’라는 단어의 접두사 ‘Cor’를 ‘Com(함께)’으로 교체하여 ‘Com•respond(함께•응답하다)’라는 의미로 만든 것이다. 이 유리판들은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그림들은 다이아몬드 드릴을 이용해 유리를 파내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유리판에 음각된 드로잉 선들은 빛을 받아 밝고 뚜렷한 형태를 드러내고, 그 이미지는 다시 전시장 바닥과 벽에 그림자로 펼쳐진다. 정지연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연구작업의 성격이 강하다’라고 평했다. 즉 빛, 소리, 금속판으로 재구성하여 발전시킬 다음 작업을 위한 전주곡 같은 작품이라는 의미이다.





사진6. 마디바람 - 스테인리스 스틸, 오간자, 전자 장비, 약 L900 x W250 x H600 cm, 2018




병풍처럼 연결되는 제작 방식은 2018년 12월 ACC 문화창조원에서 발표한 작품으로 이어졌다. [마디바람]이라고 명명된 이 작품은 복합 1관인 대형 홀에 설치되었다(사진6). 15미터 높이의 천장에서 수많은 반투명천들이 아래로 길게 걸려 있고, 전시장 가운데에는 폭 8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날개 형태의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반투명천들과 날개는 조명에 의해 사방으로 그림자들을 드리우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날개는 30개의 스테인레스 강판들로 제작되었다. 정지연 작가는 이 날개를 마디마디 연결된 존재로 생각한다. ‘마디’는 경계 지점에서 다른 것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각각의 강판 조각들은 마디마디 연결됨으로써 날개로 확장되고 바람을 일으킬 역동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지연 작가는 ‘마디’와 ‘바람’을 합친 ‘마디바람’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작품 제목으로 삼았다. 총1천 미터에 이르는 반투명천들 사이로 날아오르는 커다란 금속 날개에서는 신비한 음향이 울려퍼진다. 『장자』 ‘소요유’편에 나오는 거대한 새 ‘붕(鵬)’이 바람을 가르며 날개짓을 하는 소리처럼.

이제 정지연 작가는 [마디바람]의 날개가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꿈을 꾼다. 그가 꿈꾸는 풍경은 크고 깊고 환상적이다. 빛과 소리 그리고 물질이 어우러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한마디로 ‘생성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사물 너머 보이지 않는 생성의 세계까지 포착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열망이 육체적으로 어렵고 힘든 작업과정을 이어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앞으로 정지연 작가가 물리적인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신비하고 숭고한 풍경을 더욱더 넓게 펼쳐 보인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f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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