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신화를 통해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다









거친 물살이 흐르는 황하는 어머니강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때 올빼미와 자라가 나타나 정보를 주었다. 천상에 있는 신의 궁전에 신비로운 흙이 있는데, 그것을 한 줌 떼어 던지면 흙이 계속 불어나서 큰 산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곤은 귀가 솔깃했다. 바로 그거였다. 그런 신기한 흙이 있다니, 그것만 있으면 둑을 쌓는 것은 아주 쉬운 일 아닌가. 곤은 그 흙을 갖고 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천신의 보물이었다. 그걸 훔쳐 왔다가는 큰 벌을 받을 것이 뻔했다. 곤은 밤새 뒤척이며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결정했다.




황하의 중국 사람들의 생활의 바탕이 되는 중요한 강이다.



곤은 천신의 궁전에 가서 ‘식양(息壤)’이라 불리는 보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그 흙을 한 줌씩 떼어내어 여기저기 강물에 던져 넣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물속에 들어간 작은 흙덩어리가 점점 불어났다. 아마도 벤토나이트(bentonite) 같은 것이었는지, 흙은 크게 불어나 높은 둑이 되었고, 이제 홍수는 거의 다 다스려진 듯했다. 그러나 그때 천신이 자신의 보물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분노한 천신은 곤이 훔쳐 간 식양을 회수해오라고 했고, 곤을 처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국 곤은 죽임을 당했고, 천신은 식양을 다시 하늘로 가져갔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천신이 불안해졌다. 곤이 죽은 지 3년이 지났는데도 그 시신이 썩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다. 신은 곤이 무슨 재앙을 불러올까 봐 걱정이 되어 하늘의 사신을 내려보냈다. ‘오도(吳刀)’라는 영험한 하늘의 칼을 들고 가 곤을 다시 확실하게 처단하고 오라고 한 것이다. 사신은 오도를 들고 내려와 썩지 않고 있는 곤의 배를 갈랐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곤의 뱃속에서 아이 하나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치수의 영웅 우를 고대의 제왕으로 생각한다.



그 아이가 바로 중국 사람들이 치수(治水)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전설 속의 제왕 우(禹)였다. 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홍수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우 역시 가끔은 물을 막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가 주로 사용했던 것은 물길을 트는 방법이었다. 물이란 원래 흐르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무조건 가둬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산이 막혀 흐르지 못하고 물이 넘치면 그 산을 쪼개서라도 물이 잘 흐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바로 먼 길을 떠나 치수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았다. 그는 언제나 치수의 현장에 있었기에 늘 머리에 삿갓을 쓰고 손에 나무 삽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열심히 ‘삽질’을 했지만 그것은 물길을 잘 터주기 위한 삽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우가 물길을 잘 터준 덕분에 무시무시한 황하(黃河)가 잘 다스려졌다고 믿었고, 그 전설은 특히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싼먼샤(三門峽)에 여전히 남아있다. 황하의 물이 거대한 산에 막혀 흘러가지 못하자 도끼를 휘둘러 산을 쪼개어 ‘세 개의 문(三門)’처럼 생긴 바위섬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싼먼샤이다. 그곳의 물살이 하도 거세어 배들이 그곳을 지나가는 것이 마치 저승문을 지나가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어쨌든 그곳에는 물길을 터주어 치수에 성공했던 우의 전설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우의 사당에 가서 그의 공덕을 기린다.




산시성 한청의 대우 사당



그런데 그 싼먼샤의 물길을 막는 토목공사가 1957년에 시작되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은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고, 1949년에 마침내 중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마오쩌둥 정권이 들어서면서 ‘신중국’은 새로운 희망에 부풀었다. 그리고 거대 토목공사가 시작되었다. ‘대약진운동’이 한창이던 그 시절, 누런 황하를 푸르게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시작된 싼먼샤댐 공사는 1960년에 마침내 끝났다. 싼먼샤의 물을 가로막아 댐을 만들었고, 누런 물을 가둔 댐 아래쪽에서는 마침내 ‘황하의 물이 맑아졌다’면서 사람들이 수영하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실렸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성인이 출현한다(黃河淸, 聖人出)”라는 옛말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면서 등장한 지도자 마오쩌둥이 바로 그 ‘성인’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환호는 잠시였을 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류에 토사가 쌓이면서 엄청난 홍수가 다시 발생했던 것이다. 1년 사이에 쌓인 토사의 양이 무려 15억 톤이나 되었고 그것은 황하의 지류까지 밀려들었다. 강바닥이 높아져 자꾸 물이 넘치니 둑을 점점 더 높여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싼먼샤의 홍수를 막지는 못했다. 이렇게 되니 농경지도 소택지도 변하면서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떠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댐 건설에 반대했던 칭화대학의 황완리(黃萬里) 교수는 이후 23년 동안이나 우파로 몰리는 수난까지 당했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했다.




치수의 영웅 우를 그린 벽화. 삿갓을 쓰고 손에는 나무 삽을 들고 있다.



치수의 영웅 우가 도끼를 휘둘러 산을 갈라 물을 잘 흐르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서린 그곳에 물을 다시 막아 댐을 만든 사람들의 행위는 매우 어리석은 것이었다. 우의 아버지 곤이 물을 막는 방법을 사용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목숨까지 잃었다는 신화의 메시지를 잘 파악해야 했으나, 사람들은 그 오래된 신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막았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일부 학자들은 그 댐의 건설이 ‘실패’였다는 고백을 했으나, 한번 만들어진 댐을 다시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그들은 다시 장강(長江) 유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싼샤(三峽)댐을 만들었다. 과연 강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황하에서 가장 장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후커우폭포



우리의 4대강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흐르지 못하고 보에 갇혀있는 물이 썩는 것은 당연하다. 신화 속 곤과 우의 메시지는 중국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물은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물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다. 도끼를 휘둘러 막힌 물을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들었던 우의 재림이 시급한 시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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