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의 사원 부조에 새겨진 가옥






보로부두르의 부조는 석가의 일대기 불전도, 선재동자 순례기, 석가의 전생 이야기, 불자의 전생 이야기 등 인도의 불교 설화를 주제로 한다. 그렇지만, 그 부조를 새긴 사람은 자바 사람으로, 부조 자체가 자바 섬의 토착문화를 문화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로부두르의 부조를 통하여 당시의 왕족이나 민중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구기단(舊基亶) 동서남북의 벽면에는 당시 민중이 가장 알기 쉬운 인과응보(『분별선악응보경』分別善惡應報經, Maha Karmavibhan-인과응보를 설한 불교 경전)의 내용을 묘사한 160면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부조 O.47(보로부두르 부조 번호는 국제 표기법에 따른다)은 고상 가옥(곳간)과 지상(흙마루)식 가옥(모정, 휴식용 초석 건물)이 주목된다<그림 1>.




<그림 1> 고상 가옥(곳간)과 지상식 가옥(보로부두르, 구기단, O.47)



『분별선악보응경』 제6 대위세(大威勢, mahesakhya – 산스크리트어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에 나오는 장면으로, 곳간을 열어 많은 사람을 보시(因)하면, 내세에 귀인으로 태어나 행복하게 산다(果)는 이야기를 새긴 것이다. <그림 2>는 오른쪽에 술에 취해 여자를 끼고 있는 난봉꾼이 묘사되어 있고(因), 왼쪽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果)이 새겨져 있다. 중앙 오른쪽에 있는 작은 고상 가옥은 ‘사자의 집’(시체를 안치하는 집)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사자의 집은 수마트라섬의 바탁족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보로부두르 제1회랑 상단의 불전도(佛傳圖)는 도솔천에 있는 석가 이야기를 시작으로, 탄생, 성도, 초전법륜까지를 상세하게 새겨놓고 있다. 보로부두르의 불전도에도 화려한 궁전과 누각 등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 4>은 석가가 바라나시 성의 녹야원으로 가는 도중 많은 사람에게 공양을 받는 장면이다. 화면 왼쪽에 성안의 궁전 건물이 새겨져 있다. 초석을 사용한 2층 건물로 당시 자바 건축 기술의 뛰어난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물 2층 난간에는 햇빛을 가리는 차양이 쳐 있고, 입구에 몽둥이를 들고 앉아 있는 수문장이 새겨져 있다. 지상식(地床式) 궁전 건축의 출현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림 4> 초석을 사용한 지상식 2층 건물(보로부두르, 제1회랑, Ⅰ.A.a.116.)



보로부두르 제1회랑 주벽 하단 120면은 석가의 전세 이야기인 본생담과 불자의 전생담을 주제로 하고 있다. 부조 Ⅰ.A.b.21~24는 우포사다 왕의 전생담(The Uposada, Avadana)을 새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부조 중에 하나인 <그림 5>의 오른쪽에는 맞배지붕의 2층 목조 건물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여 기도하는 인물이 새겨져 있다. 나무 울타리 때문에 가옥 하부 구조는 알 수 없지만, 2층의 목조 고상 가옥을 새긴 것으로 보이며, 사원 혹은 영묘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5> 2층 건물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여 기도하는 인물(보로부두르, 제1회랑, Ⅰ.A.b.23)



제1회랑 하단 부조 Ⅰ.A.b.64~88는 선도 왕(仙道王) 이야기로 여겨지고 있다. 그 중 <그림 6>은 두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면 오른쪽에 항해하는 대형 범선이 새겨져 있고 왼쪽에는 곳간 앞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보시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 부조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형 곳간 건물이다. 고상 가옥 마루 밑의 기둥에 쥐 막이 턱(쥐가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이 있고, 지붕 위에 새가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쌀을 보관하는 창고를 표현한 것이다.




<그림 6> 고상 가옥(곳간)과 대형 범선(Ⅰ.A.b.86)



9세기 말에 건립한 찬디 로로 종그랑(찬디 프람바난) 안에 찬디 시바, 찬디 비슈누, 찬디 브라마가 있다. 찬디 시바와 찬디 브라마의 난순 벽면의 라마야나 이야기의 부조는 약동감이 있고 아름다운 구도와 사실적 표현은 자바 고전기 미술의 최고 걸작이다. 찬디 시바 부조 20은 라마가 사냥에 나간 사이에 마왕 라바나가 브라만 승으로 변장하여 시타 공주를 납치하는 장면이다. 찬디 브라마의 부조 21은 숲에서 라마의 아내인 시타 공주가 사내아이를 출생하여 키우는 장면이다. 이들 부조에서 흥미로운 것은 2채의 고상 가옥으로, 초석을 사용한 목재 결구법이 뛰어나며, 처마에 차양을 사용하는 등 당시의 높은 건축기술의 수준을 알려 준다. 찬디 브라마의 부조 21의 고상 가옥에는 마루를 지탱하는 기둥에 통주(通柱)가 사용되었고, 초석에서 지붕의 처마 도리(軒桁)까지 이어져 고정되어 있다. 또한, 마루와 기둥 사이에 보강재가 사용되어 건축 구조의 비약적인 발전을 알 수 있다. (그림 7, 8 참조)







중부 자바기의 8~9세기에 걸쳐 건립된 자바 섬의 보로부두르와 찬디 로로 종그랑의 회랑 벽면에 새겨진 건물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재료로는 목조, 석조, 벽돌 조로 나눌 수 있다. 건물의 기능은 궁전, 가옥, 사원, 형식적으로는 고상식과 지상식으로 분류된다. 고상식 건물은 주거용 가옥, 지붕에 곳간을 겸하는 가옥(차양, 쥐 막이 턱과 지붕 위에 새가 표현되어 있다), 곳간(쥐 막이 턱과 지붕 위에 새가 표현되어 있다), 제당(시신 혹은 유골을 안치한 사자의 집)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 고전 문화기의 중심은 10세기 중반 이후, 중부 자바에서 동부 자바로 옮겨진다. 중부 자바기의 종말에 이어지는 신독 왕 재위기인 10세기 전반부터 약 600년(929년∼1530년)간을 동부 자바기라고 부른다. 동부 자바기는 ①10세기 신독 왕 재위기(929년∼948년)부터 1042년까지의 무당 카무란 왕조기, ②1042년부터 1222년의 케디리 왕조기, ③1222년에서 1292년까지가 신고사리 왕조기, ④13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기까지를 마자파힛 왕조기로 분류한다. 이 지역에서 왕권은 아르주나산(3239m) 주변을 시계 방향으로 흐르는 부란타스강을 끼고 성쇠했다. 이 시대를 동부 자바기라고 부르지만, 지역적으로 더 넓은 의미가 있다. 무당 카무란, 케디리, 신고사리, 마자파힛의 4 왕조가 흥망성쇠를 했는데, 이들 왕국은 동부 자바를 벗어난 넓은 지역까지 지배했다.
중부 자바의 솔로 시 동쪽의 라우 산에 14∼15세기 건립의 찬디 수쿠(1,186m)와 찬디 체토(1,400m)가 있다. 수쿠 사원 본전 북쪽 테라스의 벽면에 고대 자바 문학의 ‘수다마라 이야기’ 부조가 있다. 수다마라는 인도의 마하바라타 이야기에 나오는 ‘판다바 족’의 5왕자 중 하나인 사하데바이다. 두르가가 쿤티로 변신하여 사하데바를 붙잡아 나무에 묶어놓고 자신의 저주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의 부조에 초석 고상 가옥이 새겨져 있다<그림 9>. 중부 자바기와 동부 자바기의 고상 가옥 부조를 비교하면 중부 자바 가옥 지붕 위에 있는 새 부조가 사라지고, 동부 자바에서는 지붕 재료도 기와 혹은 나무판자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14∼15세기의 동부 자바기 부조는 양감이 없고, 현저하게 자바 풍(와양 양식)으로 양식화한다<그림 10>.







찬디 체토 내원에는 초가지붕의 고상식 사당과 나무판자로 지붕을 한 지상식 목조 사당이 있다. 자바 섬의 다른 사원 유적에서 볼 수 있는 석재 건축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자바 섬의 사원은 우선 목조 건축으로 시작하여 차차 내구 재료를 사용한 석조 건축으로 이행해 간다. 따라서 중부 자바의 찬디 수쿠와 찬디 체토의 사당은 자바 섬의 가장 원초적인 사원 건축 형태를 전해 주고 있다.
동부 자바기의 건축과 미술에서‘자바화(化)’한 양식을 감지할 수 있다. 사원 건축도 동부 자바기의 예술은 친숙한 소박함을 느끼게 하며, 높이보다 폭이 강조되어 한층 안정미를 과시한다. 건축 재료로는 벽돌(테라코타)과 기와를 사용하고, 벽돌의 아름다운 건축이 동부 자바에서 성행하고, 이러한 벽돌 조(造)의 건축은 발리의 건축에도 영향을 끼친다. 중부 자바기의 사원 부조를 보면 목조 건축도 많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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