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류의 또 하나의 국경" 북중국경(압록강과 두만강)을 가다










ACC 목요일의 문화시계에서도 최근 이런 남북 교류의 움직임에 맞춰 ‘문화예술로 만나는 북한이야기’- “어서와 북한은 처음이지?” 강좌를 진행 중이다. 70여년 세월, 분단이라는 장벽에 가려져있던 북한의 모습을 문화예술적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하는 강좌로, 총 다섯 회로 구성됐다. 영화와 노래와 사진과 음식, 문화인류학적 시선으로 보는 북한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껏 우리가 알던 북한의 모습이 과연 진정한 북한일까? “어서와 북한은 처음이지?” 강좌들은 공통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남북 교류의 또 다른 국경, 북·중 국경을 가다’의 강주원 박사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북한이 폐쇄적인 국가인 것은 맞지만 이 말에는 단서가 붙는다. ‘한국사회가 알고 있는 만큼 폐쇄적인 국가는 아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과 실제의 북한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존재한다. 고정관념과 선입견, 편견이 만들어 낸 괴리. 강주원 박사는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무엇도 검증하지 않으려는 기존의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한다.





다양한 수강생들이 강의실을 가득 채워 북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11월 15일 열린 ‘남북 교류의 또 하나의 국경: 북·중 국경을 가다’ 강좌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강의실을 가득 채워 북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2000년도부터 시작해 20여년 가까이 남북의 또 다른 국경을 연구해온 문화인류학자 강주원 박사가 강의를 이끌었다. 남북교류하면 휴전선 넘나들기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남과 북 사이에는 오랜 세월 또 하나의 국경이 존재해왔다. 바로 압록강이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 사이를 흐르는 압록강변. 그곳에는 국경과 국적을 넘어 아웅다웅 오손도순 살아가는 네 집단의 삶이 있다.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 ‘낯선 곳에서 진정한 나를 만난다’는 인류학의 모토처럼 강주원 박사는 20년 전 처음 밟은 두만강 그리고 압록강변 땅에서 새로운 남북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학 현지조사로 두만강 바로 옆에 있는 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떤 사람이 두만강을 건너갔다가, 조금 후 개 한 마리를 안고 건너오는 모습을 보았어요.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으로 혼란스러웠죠. 얼마 후에 조선족 사람을 만났는데 강 건넛마을에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알고 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내가 아는 분단된 남북의 현실과는 너무 달라서 그 때 충격이 심했죠. 그 후로 압록강, 두만강변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네 집단 의 삶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휴전선은 가로막혀있지만 남과 북은 압록강과 두만강변에서 끊임없이 교류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해왔다. 보통 국경이라고 하면 엄중하고 살벌한 철조망과 선을 떠올리지만 압록강과 두만강에는 선이 없다. 정해진 선이 없기에 강 위에서의 만남과 소통은 그곳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이다. 철조망도 최근에 경계를 알리기 위해 세워졌을 뿐, 흔히 아는 것처럼 탈북자 방지용이 아니다. 남과 북의 사람이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같은 마트의 상품을 이용하는 일상. 통일 이후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단둥에서 볼 수 있는 현재의 모습이다. 강주원 박사는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너무도 간과하고 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휴전선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교류와 왕래가 빈번한 단둥 지역을 주목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수십 년 동안 단둥에서는 남북의 경제, 문화적 교류가 이어지고 있거든요. 통일 이후만을 상상할 뿐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이 정말 답답하죠.”






①대북제재 초기의 신의주 풍경(2007) ②대북제재 10여년 동안 변화해온 신의주 풍경(2018)
③단둥역, 귀국하는 북한사람들(2018) ④단둥역, 귀국하는 북한 여성들(2018)






가장 가까운 한민족이지만 가장 멀었던 곳, 북한.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와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시작된 대북 5.24 조치 이후 남과 북의 관계는 단절 그 자체였다. 특히 2016년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남북 관계 역시 문을 닫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개성공단만 폐쇄하면 북한이 망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남한 기업의 손실이 수조원에 이르렀고 북한의 시계는 계속해서 돌아갔다. 강주원 박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의 경제상황은 많은 부분 왜곡돼 있다고 얘기한다. 소위 보수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북 퍼주기 비판’, ‘대북제재를 통한 북한 붕괴론’ 등은 단둥의 현주소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 착오라는 말이다. 단둥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만 해도 2만 명이 넘고, 단둥과 평양을 연결하는 열차를 통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단둥을 오고 간다. 단둥이 또 하나의 개성공단인 것이다. 5.24 조치와 개성공단 폐쇄라는 장애물이 있지만 단둥 지역만 잘 활용한다면 남북의 경제교류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착공 이전에도, 폐쇄 이후에도 단둥 지역은 중국, 북한, 남한 삼국의 경제 교류의 장이 되어왔어요. 북한 사람이 단둥에 있으면 탈북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합법적인 해외 노동자에요. 북중 관계를 지원과 원조 관계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경제 공생을 하는 관계인 것처럼. 이런 사실을 간과해서 남북 교류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어요.”






①단둥 세관 ②단둥 세관이 만차인 관계로 들어가지 못한 트럭들이 세관 밖 도로에서 긴 행렬로 대기하고 있다. 이 모습이 단둥의 현실이다.
③단둥 세관. 신의주로 향하는 중국 여행객들 ④단둥 압록강공원을 산책하는 북한 여성들






올 초 평창 동계올림픽과 남한 예술단의 평양 공연 등에서 전해졌던 북한의 모습은 놀랍게도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련된 복장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북한의 젊은 여성, 곳곳에 고층건물이 들어선 평양의 도심,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북한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이어지는 정말 당연한 사실이 왜 그토록 놀랍고 낯설게 다가왔을까. 강주원 박사는 우리가 접하는 뉴스보도에 문제제기를 한다. 단둥 세관이 텅텅 비어간다는 보도는 세관이 휴일인 날이었고, 북한사람들이 관광유람선에 물건을 판다고 알려진 내용은 중국인이 밀수품을 파는 모습이었다. 대북제재 이후 문을 닫았다는 북한 식당은 100미터 옆으로 이전한 것이고, 신의주 압록강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유는 북·중 국경이 엄중하게 단속돼서가 아니라 단지 추운 겨울이어서 그럴 뿐이다. 피상적인 모습만으로 북한의 실체를 다 본 것처럼 오해하는 현실, 북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높은 장벽이다.

“바깥은 영하 15도, 20도인데 강변에 나와서 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뉴스보도에서는 김정일 사망 이후 북중 국경이 살벌해졌다는 보도가 이어지거든요. 기자들에게 실상을 얘기를 해줘도 실제 보도는 그렇게 나가요. 북한에 대해서만은 사실보다는 고정관념이 우세한 거죠”






강주원 박사/ 인류학 박사






통일은 미래담론이 아니다. 단둥에서 지금 만날 수 있는 현재의 이야기다. 강주원 박사는 우리가 실질적인 통일의 길에 들어서기 전에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내가 아는 북한의 모습이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북한을 다시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작은 부분을 보고 전체로 해석하는 오류도 위험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얼마나 적은 정보를 가지고 북한을 판단했는지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에요. 북한에 대한 왜곡된 편견이 무척 많아요. 통일을 이야기하려면 우리 안의 편견을 다시 보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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