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속 상상의 세계로







아시아의 문화자원을 기반으로 다양한 어린이공연을 창작해 온 ACC가 ‘2018 ACC 참여형 어린이공연 창작지원사업’을 통해 선정된 5개 작품의 초연 공연을 진행하였다. 이번 지원사업은 국내 어린이공연의 창·제작 환경 조성은 물론 어린이공연 활성화를 위해 마련되었으며 지난 4월 전국 공모를 통해 9.4: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단체들이 어린이극 전문가와 자문위원의 엄격한 단계별 인큐베이팅 과정(역량강화워크숍, 쇼케이스, 트라이아웃 등)을 통해 완성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이 글에서는 초연된 5개 작품 중 10월 7일 공연한『극단 무릎베개』의 ‘달아난 수염’을 위주로 창작지원사업 전반을 소개한다.











2018 ACC 참여형 어린이공연 창작지원사업을 통해 선정된 작품은 모두 다섯 작품이다. 『극단 푸른 해』의 ‘우리의 새해는 언제 시작될까?’ 와 『극단 무릎베개』의 ‘달아난 수염’, 『극단 파랑새』의 ‘용감한 탄티’ ,『창작집단 보이야르』의 ‘로힝야의 노래’, 『스튜디오 나나다시』의 ‘우산도둑’ 등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가진 단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참여하였다. 이 공연들은 어린이를 단순히 극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벗어나 극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식의 소규모 공연을 창작, 지원하는 사업 취지에 맞춰 개발되었으며 특히 다양한 아시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4개월여 기간 동안 (사)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김숙희 이사장을 예술 감독으로 두고 어린이 공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세계적 명성의 영국 웨일즈 극단 아라곧의 대표 제레미 터너가 참여한 전문워크숍 및 역량강화 워크숍 등을 진행함으로써 보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었다고 한다.




<극단 무릎베개> 달아난 수염



어린이를 위한 전문 극단인 『무릎베개』의 ‘달아난 수염’은 이번에 선보인 다섯 작품 중 두 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사실 다양한 연극적 요소를 활용해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는 무릎베개의 다른 작품을 인상 깊게 보았던 필자로서는 이번 공연에선 또 어떤 재치와 상상의 무대를 펼칠지 사뭇 기대감에 부풀어 공연을 지켜보게 되었다. 스리랑카의 옛이야기를 각색한 ‘달아난 수염’은 지혜로운 바분 할아버지와 생쥐 그리고 소녀 라투메니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길어진 수염 때문에 사다리 위에서만 생활하던 바분 할아버지는 수염을 자르겠다! 결심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수염은 마구마구 자라나 마을의 이곳저곳을 뒤덮는다. 기발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무대 위 배우들과 다양한 오브제들을 통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되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수염을 표현하는 배우들



이 공연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오브제들의 활용이었다. 특히 극의 주요 모티브인 수염을 기다란 줄은 물론 화장지, 무지개 스프링, 부채 등을 활용해 표현하고 있으며 불을 피우는 장면에서는 붉은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불이 붙었다, 꺼졌다 하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들은 흡사 아이들이 물건을 가지고 다양한 역할놀이에 활용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습과 비슷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개발된 공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아이들은 공연을 가만히 지켜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작품을 보는 동안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소녀, 라투메니카에게 고양이의 행방을 알려주거나 마을을 뒤덮은 수염을 자르기 위해 불을 붙이는 라투메니카에게 힘을 모아 바람을 불어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극에 참여한다. 이러한 어린이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그 참여의 경중을 떠나 다른 4개의 작품에서도 공히 고민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공연을 통해 어린이 관객들의 흥미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왼쪽 위 부터 <보이야르> 로힝야의 노래, <극단 파랑새> 용감한 탄티,
<극단 푸른 해> 우리의 새해는 언제 시작될까?, <스튜디오 나나다시> 우산도둑



사실 어린이공연은 다른 매체에 비해 어린이들의 접근성이 쉽지 않은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해 누군가 표를 예매해 주어야 하고 공연장까지 데리고 와 주어야 관람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보호자 즉 어른들의 수고와 적극적 개입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른들은 이러한 수고를 마다않고 이 공연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까? 그것은 바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상상과 재치를 오직 이 곳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TV, 책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무대 속 상상의 세계는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유명 캐릭터들이 나오는 어린이 뮤지컬들이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그에 비해 소규모로 진행되는 이러한 공연들은 전혀 다른 질감과 무게감으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쿵쾅거리게 할 것이다. 화려한 눈요기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자극적인 음악소리는 없지만 보다 깊이 있는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이러한 공연을 통해 우리는 더 다양한 문화와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작품들은 11월, 종로 아이들 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으며, 2019년 제15회 아시테지 겨울축제와 ACC어린이극장 시즌공연으로 다시 한 번 관객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 또한 ‘ACC 참여형 어린이공연 창작지원사업’은 내년에도 계속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단체들의 많은 참여와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보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아이들과 무언가를 보고 난 뒤 항상 무심결에 건넸던 말이 있다. ‘오늘 재밌었니?’. 그런데 그렇게 물으면 아이들의 생각과 대답은 그 질문에만 갇히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대답은 ‘재밌었다’와 ‘재미 없었다’로 양분될 뿐이다. 그리하여 이제 질문을 좀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엔 어떻게 물어야 할까? 질문의 답을 찾으러 왔다가 질문을 붙여 돌아가는 길이다.








 

 

 

by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