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상상력의 분출과 경계 없는 도전









관람객이 공간과 소통하고 머무를 수 있는 전시를 지향하며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관객이 소통하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 ADHD의 프로듀서인 김영은은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사람, 사물, 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여 이야기와 다양한 기술 및 매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는 것이 작업의 목표다. 김지하는 건축가, 공간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다. 새로운 경험과 영감을 주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 정설아는 그래픽 미디어 디자이너이자 니팅 아티스트이다. 어린시절 담요 속의 포근했던 기억처럼, 찰나의 순간과 기억들을 다양한 재료와 소품들로 정성스럽게 엮어내어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사진1-1-Body Landscape_프로젝터, 섬유, 플라스틱_6000x1500x1500mm_2013-06



직장을 다니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눈엔 예술가들이 대체로 몽상이나 공상에 자주 빠져 있는 사람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자기 멋대로 살면서 별로 쓸모도 없고 현실성도 없어 보이는 잡다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거나 이해하기 힘든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가들이 어느 정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의미 없는 짓만을 하며 살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개성이 넘치는 예술가들 덕분에 우리는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 마술처럼 흥미진진한 풍경을 만나곤 하질 않는가? 그런데 이렇게 독특한 예술가들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런 활동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아티스트 그룹 ADHD’이다. 2015년 결성된 ADHD 는 미디어아트, 건축, 공예 등을 전공한 3명의 예술가들(김영은, 김지하, 정설아)이 꾸려가는 그룹이다. 그룹명 ADHD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증후군’을 의미하는데, 그 이름이 연상시키는 것처럼 구성원들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상상력을 내뿜고 있다. 특히 쓸모없어 보이는 생각의 단초들을 좌충우돌하며 의미 있는 것으로 발전시키는 일이 그들의 특기다. ADHD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김영은 작가는 ACC에서 진행하는 크리에이터스 인 랩(CREATORS IN LAB)이라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ACC스튜디오에서 그의 작업과 ADHD의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진1-2-Body Landscape_프로젝터, 섬유, 플라스틱_6000x1500x1500mm_2013-06





김영은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영상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이 시기에 그의 진로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대학 3학년 때 인터랙티브 미디어와 관련된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때는 왜 그런 것을 배워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흥미도 생기질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때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실용성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가상의 기호들이 물리적 세계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그는 프로그래밍에 매력을 느꼈고 자신의 진로도 그 방향으로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엔 1년 6개월 동안 전시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원하던 영국 유학을 감행하여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사진2-1-Hear the Cloud_섬유, 플라스틱_2000x900x2000mm_2013-08





런던에서 김영은 작가는 새로운 작업의 세계를 만났다. 그는 미디어아트 외에도 연극, 퍼포먼스, 건축, 공간 디자인 등이 혼합된 종합적인 프로젝트를 경험하였는데, 이를 통해 ‘협업’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런 협업의 경험은 학부뿐만 아니라 건축 대학원에서도 이어졌다. 특히 대학원 과정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상당히 흥미로웠다고 한다. 팀별로 주어진 과제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3개의 도시에서 진행한다는 조건이었는데, 여러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전시와 공연 등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김영은 작가는 음악, 무용, 디자인 등이 결합된 퍼포먼스 <바디 랜드스케이프/ Body Landscape >를 함께 창작했다.(사진1-1.1-2) 2013년 런던과 마드리드에서 행해진 이 퍼포먼스에서는 8x4미터 크기의 천에 삼각형 플라스틱 조각들이 픽셀처럼 연속으로 덧붙여진 구조체를 선보였는데, 이 입체적인 구조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접히고 펴지면서 경계 없는 유동적인 세계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빛이 투과되는 이 구조체에 무용수의 실제 그림자와 빔프로젝터로 투영되는 가상의 그림자 형태가 섞이면서 픽셀처럼 조각나고 과장된 이미지가 환상적으로 연출되었다.






사진2-2-Hear the Cloud





이러한 프로젝트는 조금 더 변형된 형태로 리스본 아키텍쳐 트리엔날레(Lisbon Architecture Triennial)에서 다시 선보였다. <히어 더 클라우드 / Hear the Cloud>(사진2-1, 2-2)라는 제목처럼 변형 가능한 구조체는 구름 모양으로 만들어져 외부에 설치되었다. 이 구름 조각이 설치된 장소는 과거에 궁전과 학교로 사용되었다가 방치된 곳이었는데, 장소의 성격에 맞게 잠시 생겨났다 사라지는 가벼운 구름 형태를 통해 덧없는 시간의 흐름을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구름 형태의 구조체는 무용수들의 의상으로도 제작되어 안무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채집한 다양한 소리들이 구름 조각 속에서 흘러나오도록 음향 작업도 접목시켰다. 또한 이 소리들을 연주자들이 음악으로 발전시키는 작업도 병행하였다.






사진3-무대디자인 -Piano Men_2016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영은 작가는 ADHD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처음 그룹을 결성할 당시에는 서로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스터디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점점 각자의 전문적인 재능이 합쳐지면서 전시, 공연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프로젝트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게 되었다. (사진 3,4)

ADHD의 작업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협업’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ADHD의 구성원들은 모든 과정을 함께 하면서 끊임없이 토론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각자 다른 영역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용하는 언어, 일하는 과정, 문제 해결 방식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각자가 이해하는 그 단어의 개념이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세밀하고 체계적인 상호 이해의 과정을 공유하려고 한다. 그리고 주관적인 감성과 상상의 영역을 논리적으로 펼쳐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과정을 통해 프로젝트의 세부적인 모양새를 함께 조율하고 다듬어 나간다. ADHD 구성원들의 치밀한 협업 과정에 대해 듣다 보면,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처럼 쉽게 ‘융복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업들과 비교하게 된다.






사진4-무대디자인- Begin again_2016





ADHD의 작품들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들은 미디어 설치작업인 <라이트 스페이스 미디엄> 연작과 미디어 퍼포먼스인 <거문고 스페이스>이다. <라이트 스페이스 미디엄1 : 코스모 / Light-Space-Medium 1 : COSMO>(사진5)은 대만에서 레지던시를 하는 동안 제작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수많은 실로 엮은 그물 구조물을 설치한 후 빔프로젝트를 이용하여 변화하는 영상을 투영한다. 무엇보다도 영상과 빛의 효과 때문에 3차원적인 홀로그램 공간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관객들은 비현실적인 가상의 디지털 공간이나 작은 은하계의 한 지점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또 하나의 연작은 <라이트 스페이스 미디엄3 : 더 라이트 / Light-Space-Medium3 : The Light>다.(사진6) 이 작품 역시 대만에서 전시되었는데 실로 겹겹이 짜여진 기둥 구조물에 빔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영상을 투영하는 방식이다. 중앙에 설치된 기둥 구조물의 형태는 우주의 웜홀(worm hole)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작품의 제목처럼 ‘빛은 생명이다’를 주제로 삼았는데, 설치 공간을 떠도는 빛들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소립자들처럼 생명력 있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사진5-Light-Space-Medium1 : COSMO_프로젝터, 실, 나무_8000x4000x11000mm_2015-09





비교적 최근의 작품인 <거문고 스페이스 / Geomungo Space>(사진7)는 소리와 빛 그리고 몸의 움직임을 새롭게 결합시킨 퍼포먼스다.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2017년 3월에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상연되었는데, ADHD의 미디어아트와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의 음악 등이 어우러진 공동작업이었다. 허윤정이 창작한 현대적인 거문고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ADHD가 수많은 실들로 구축한 입체적인 무대 배경엔 변화무쌍한 거문고 소리의 파동이 퍼지듯 영상이 변화를 일으킨다. 흡사 거문고의 현이 무한히 확장된 것처럼 보이는 수백 개의 실들은 소리를 유동적인 빛으로 형상화하면서 시공간을 신비로운 차원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무용수가 우주 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소리와 빛을 매개하는 상징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복합적인 퍼포먼스는 ACC의 지원을 통해 2017년 10월 액트페스티벌(ACT Festival) 개막 공연으로 다시 한번 무대에 올려졌다.






사진6-Light-Space-Medium3 : The Light_프로젝터, 실, 나무_4000x5000x4000mm_2016-11





현재 ADHD는 ACC에서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끝나는 오는 12월 전시회에서 독특한 키네틱 아트를 보여주려고 준비 중이다. 주로 김영은 작가가 ACC에 머무르며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체발광 / bioluminescence>으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에서 보여줄 작품은 약 4~5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입체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은 전시장 천장 쪽에 설치되어 마치 심해에서 유영하는 생명체처럼 유유히 움직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발산하게 된다. 그 밖에도 광섬유를 이용한 해저 식물 이미지들을 설치하여 환상적인 공간으로 연출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이곳을 찾은 관객들은 깊은 바닷속에 빠져서 미지의 생명체들 사이를 떠도는 듯한 느낌에 빠질 것 같다. 이 프로젝트는 ADHD가 그동안 중심적으로 표현해온 ‘빛’과 생명체의 ‘움직임’을 결합시킨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사진7-1-Geomungo Space_프로젝터, 실, 나무_9000x4000x2500mm_2017-03





ADHD는 시간과 공간, 에너지와 빛처럼 끊임없이 변하면서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다양한 매체로 물질화 시키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들이 창조한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새로운 체험을 하기를 바란다. ADHD에게는 우주가 보여주는 신비로운 현상들과 끝없이 생성과 소멸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이 영감의 원천이다. 호기심 많은 그들은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경계를 두지 않는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술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영상, 조각, 설치, 퍼포먼스, 무용, 음악, 패션, 건축, 공예, 디자인 등 분야를 초월하여 다양한 표현 방법들을 혼합하는 종합적인 예술을 지향한다. ADHD의 도전과 실험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사진7-2-Geomungo Space_프로젝터, 실, 나무_9000x4000x2500mm_20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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