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스'로 중앙아시아를 읽다















키르기스인에게 마나스란@f96

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 페르시아, 터키, 아랍, 중국 등 주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동서의 문명이 교차하던 곳이어서 예로부터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다. 이로 인해 키르기스인들에게 민족의 독립은 매우 중요했다. 9~10세기 인물로 추정되는 ‘마나스’는 외적을 물리치고 민족국가를 재건하는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된다.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던 유목민족에게는 민족을 단합시켜주는 강력한 전쟁영웅 ‘마나스’가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이후 ‘마나스’는 키르기스 민족의 영광을 드러냄과 동시에 키르기스의 민족적 동일성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1,000여 년 동안 구전되어온 서사시 <마나스>는 키르기스인의 민족영웅인 마나스와 그의 아들 세메테이, 손자 세이테크 3부작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마나스>는 구전문학이라 여러 버전이 존재하지만 가장 긴 것은 50만행에 이른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보다 2배 반 길고,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의 서사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보다 18배 정도 길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키르기스인의 구술문화를 집대성한 <마나스>에는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역사와 생활상, 전통, 관습, 문화 등 수많은 정보들을 담고 있다. <마나스>가 키르기스인의 삶을 담은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라이브러리파크 기획관3에 처음 들어서면, 사막에서 키르기스 인들이 ‘콕보루(kok-boru)’라고 불리는 전통 기마경기를 즐기고 있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콕보루는 말을 탄 상태에서 축구공 대신 염소나 양의 시체를 상대방의 골대에 넣으면 이기는 유목민의 전통 스포츠로, 먼 옛날 들짐승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키르기스인들의 민족영웅 마나스의 탄생과 죽음이 구현된 샌드아트 영상과, 독일혈통의 키르기스인 테오도르 헤르젠(Theodor Herzen)이 ‘마나스’의 일대기를 판화로 제작(1972년부터 1980년까지 제작)한 작품 일러스트레이션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마나스’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스토리, 10대 중반에 왕의 자리에 선출되는 이야기 등이 담겨있다.









유르트 그리고 쉬르닥, 알라-키이즈로 보는 키르기스인의 삶

서사시 <마나스>외에도 키르기스인의 삶과 문화, 생활상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특히 ‘유르트(yurt)’는 유목민 키르기스인들의 이동식 주거형태로 이들이 태어나 성장하고 죽을 때까지 그들의 일생을 함께 하는 공간으로 이들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유르트는 여러 명이 함께 만드는데, 남성들이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재료(나무, 가죽 등)를 사용하여 집의 틀을 만들고, 여성들은 이 틀의 외부를 감쌀 수 있는 덮개를 만들며 내부에서 필요한 작업을 한다. 이렇듯 키르기스인들은 공동 작업을 통해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다음세대에게 무형의 유산을 전승한다.

또한 쉬르닥(shyrdak)과 알라-키이즈(Ala-kiyiz)는 펠트로 만든 일종의 카페트로, 단순히 보온을 위한 생활용품의 의미를 넘어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서 키르기스인의 정체성이 담겨있다. 이 역시 여러 명이 공동으로 협동하여 제작하는데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알라-키이즈와 달리, 쉬르닥은 재료나 제작과정이 까다롭다. 제작기간이 1년이 걸릴 정도로 온 정성을 기울여 제작되며, 집안에서 중요시 여겨지는 장소에 놓여진다. 그러나 현재는 무형유산을 계승하려는 젊은 층이 줄어들면서 인류무형문화유산 긴급보호목록으로 2012년에 등재되었다. 전시장 한켠에는 양의 뿔과 독수리 등의 모습을 형상화 한 전통문양으로 제작된 쉬르닥이 걸려있다.









마나스의 전승자, 마나스치

다시 마나스로 돌아가 보자. 50만행에 이르는 서사시가 구전으로 어떻게 전해져왔을까@f97 바로 마나스의 전승자이자 암송자인 ‘마나스치(manaschi)’ 덕분이다. 여기서 ‘치’는 일정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튀르크어 접미사인데 우리말에 장사치 할 때 쓰는 ‘치’와 동일한 말이다. 마나스치는 악기 반주 없이 구술하는데, 저마다 리듬이나 어조, 몸동작과 같은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 이들은 기본적인 이야기 구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버전으로 구술한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마나스치는 누구나 될 수 있을까@f98 마나스치는 단순히 마나스를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힘이 있고, 예지몽을 꾸는 사람으로 민족의 고귀함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마나스치는 민족적 경축일이나 가족들의 잔치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 마나스치는 항상 잔치의 중요한 손님이며, 도처를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고 키르기스인들의 환영과 존경을 받는다. 동시에 사회적인 갈등이나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그들을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마나스치가 암송하는 모습이 궁금하다면@f99 ACC <마나스>전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리듬감과 추임새와 같은 것들은 어쩌면 우리의 판소리와도 닮아있다.











‘마나스’가 정말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키르기스인은 지금도 자신들이 ‘마나스’의 후손이라 믿고 있으며,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들에게 <마나스>는 여전히 살아서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고 있는 서사 그 이상이며, 민족의 자긍심이다.

이번 기회에 <마나스: 유네스코 등재 인류 최고의 서사시>展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문화에 한걸음 다가서보면 어떨까@f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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