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참여예술로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다!











그가 연구하는 주제가 무엇이고 또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동시대 한국미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소상하게 한국미술과 관련된 내용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연구하는 주제가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함께 공유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의 이야기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깔려 있다. 그를 인터뷰한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Q : ACC 리서치 펠로우십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f83


A : ACC는 확실히 아시아 예술과 문화에 종사하는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중심지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이 펠로우십에 참여함으로써 저의 학문적 네트워크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전쟁 후 한국과 일본 미술에서 사회적 정치적 실천이 어떻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지 숙고하기 위해 한국의 현대 미술과 동시대 미술에 대한 지식을 심화시키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ACC는 저에게도 이상적인 장소입니다.



Q : ACC에 머무르면서 연구하는 주제가 <문화와 탈제국화 : 냉전과 동시대 한국미술>인데, 이런 주제를 선택한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요@f84


A : ACC에서 저의 연구 목적은 냉전사와 동시대 한국미술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한국 예술가들’이라고 말할 때 저는 또한 ‘자이니치(재일 在日)’ 한국 예술가들도 떠올립니다. ‘자이니치’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장기 또는 영구적으로 체류하는 한국인을 말하며 대다수는 일제 식민지 조선에 그들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이니치 한국 예술가들의 존재는 일본미술사와 한국미술사 모두에서 소외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냉전의 유산과 관련하여, 자이니치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과 프로젝트를 포함한 동시대 한국미술을 논의할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사진2) 정리애, <제사>, 2017.



Q : <문화와 탈제국화 : 냉전과 동시대 한국미술>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주요 연구 내용을 소개해주세요.


A : 저의 연구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인 ‘탈식민지 동아시아’는 동아시아가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이후의 상황을 다룹니다. 이것은 식민주의와 냉전의 역사가 동아시아의 현재 환경을 어떻게 형성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회학적 연구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냉전과 한국’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첫 번째 부분에서 동아시아의 탈식민지 상태를 담론적으로 분석한 데 이어, 냉전과 한국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의 학술 논문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동시대 한국미술작품을 다루며, 예술가들이 냉전사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방법을 고찰합니다. 이 부분의 사례 연구에는 임흥순의 ‘비념’(2012), 최원준의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2013), 권하윤의 ‘489 년’(2016) 등이 포함됩니다. 네 번째 부분에서는 ‘자이니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주제로 동시대 한국미술의 담론에 그들의 작품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찰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오하지, 금선희 (사진 1), 정리애 (사진 2), 이렇게 세 작가의 작품들을 살펴봅니다.



Q : 자이니치 한국 예술가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박사님 외에도 일본에서 자이니치 한국 예술가들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f85


A : 최근에 일본에서는 점점 자이니치 한국 예술가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세계화의 경향 때문에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이 함께 활동하면서 국제적인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회적인 문제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공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재일 미국 예술가들은 트럼프의 반이민자 정책에 대해 거부하는 행동을 합니다. 20세기 세계대전을 통해서 타민족에 대한 차별과 배척을 심각하게 경험했는데 그런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아무튼 이런 분위기가 자이니치 한국 예술가들을 주목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Q : 광주시립미술관에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씨가 기증한 자이니치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f86


A : 하정웅 씨가 많은 작품들을 수집해왔고 한국의 여러 미술관에 수많은 작품들을 기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양규 작가처럼 하정웅 씨의 작품 수집 대상이었던 과거의 자이니치 한국 예술가들의 활동도 알고 있습니다. ACC에서 연구하는 동안 광주시립미술관에도 방문할 생각입니다.




히로키 야마모토 박사



Q : ACC에서 머무르는 동안 박사님의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까@f87


A : ACC 리서치 펠로우십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저의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많은 유익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인도네시아와 미얀마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연구자들과 아이디어를 교환한 것입니다. 물론 냉전의 경험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다르지만 냉전의 역사는 똑같이 동남아시아에 수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저는 이 지역에서 일하는 연구자들로부터 동남아시아 내 냉전의 영향에 대한 중요한 지식을 배웠습니다. 또 다른 의미있는 기회는 8월 초에 진행한 강의입니다. 강연을 마치고 탈식민지 분야를 연구하는 전남대 사회학과 강진연 교수와 함께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토론은 실제로 저의 연구에 다른 차원을 더해주었습니다. 저에게 큰 기회를 제공해주신 것에 대해 ACC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Q : 박사님은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글에서 ‘사회참여예술(socially engaged art)’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사회참여예술’은 어떤 형태의 예술인가요@f88


A : ‘사회 참여 예술’의 정의가 예술가, 큐레이터, 학자에 따라 달라서 정말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예술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모든 예술은 ‘사회참여예술’입니다. 그러나 좀 더 제한된 정의를 채택하고자 합니다. 저는 보통 ‘사회참여예술’이라는 용어를 ‘협동적이고 참여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려는 예술적 실천’이라고 정의합니다. 저는 이 정의가 ‘사회참여예술’의 두 가지 중요한 측면, 즉 ‘과정’과 ‘결과’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사회참여예술’ 프로젝트는 예술의 한계뿐만 아니라 사회에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도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많은 학문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전능하지 않지만, 독특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예술가이자 연구자로서 항상 가능하면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서 저의 실천을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사진3) 시징맨, <시징 - 시징올림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08



Q : 사회참여예술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요@f89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A : 현대 동아시아 예술의 사회적 실천에 관해서는 일본 작가인 츠요시 오자와, 한국 작가 김홍석, 중국 작가 첸 샤오시옹이 공동으로 결성한 ‘시징맨(西京人)’활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슬프게도, 첸은 201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징맨은 2015년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그룹의 이름으로 그들이 발명한,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도시를 등장시켰습니다. 시징맨은 특이한 공간을 창조하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예술가들과 관객들이 동아시아의 지리적, 정치적 긴장과 일시적으로 거리가 먼 다른 방식으로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시징맨은 유머러스한 프로젝트입니다. 예를 들어, ‘시징 - 시징올림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08)는 그룹 구성원들이 베이징 올림픽 기간 동안 자신의 올림픽 경기를 치르면서 베이징 올림픽을 패러디한 것입니다(사진 3). 이처럼 그들은 장난스럽지만 급진적인 질문을 던지고 ‘민족국가’와 ‘세계화’와 같은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에 도전했습니다.



Q : 특별히 사회참여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개인적인 동기가 있었나요@f90


A : 저는 일본에서 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들었던 첫 번째 강의는 ‘계급’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 교수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일본에 계급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일본엔 유럽 국가와 달리 계급이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에 놀랐습니다. 그가 올바르게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특히 어린이와 여성의 빈곤 같은 계급 불평등의 형태를 일본 전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사회에 숨겨진 많은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2009년 도쿄 현대미술관에서 레베카 호른(Rebecca Horn)이라는 독일 작가의 작품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예술의 힘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술이 사람들의 인식을 자극하고 영향을 줌으로써 숨겨진 사회적 문제를 가시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예술의 사회적 잠재력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사진4) 히로키 야마모토, <다른 사람들의 표현>, 2015



Q : 혹시 박사님이 직접 진행한 사회참여예술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 저는 2015년 일본 교토 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이 개인전에서는 저는 ‘난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민족적 배경을 가진 교토 사람들과 협력하여 <다른 사람들의 표현>이라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다양한 집단 활동을 통해 이 프로젝트는 편견과 고정 관념에서 분리된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의 대안적인 표현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저는 이 공동 작업과 참가자들과의 인터뷰를 보여주는 비디오와 사진으로 구성된 설치작업을 했습니다 (사진 4). 또 2016 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예술가 레지던스의 일환으로 ‘문화 검열 (Censorship of Culture)’이라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저는 일본 통치하의 한국에서 검열에 의해 삭제된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 작품에서 문장들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참가자들이 식민지 시기에 쓰여진 문학 작품의 검열된 부분을 읽는 일련의 워크샵을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비디오 설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사진 5). 이 프로젝트는 일제에 의해 자행된 식민지의 검열을 현대에 비추어 재검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Q : 사회참여예술이 실질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까@f91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f92


A : 제가 말했듯이, 예술은 사회 개선을 위한 완벽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술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많은 분야들이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영역에서 예술이 기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각과 상상력의 영역입니다. 즉, 예술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보거나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기존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감각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사진5) 히로키 야마모토, <문화의 검열>, 2016



Q : 한국의 사회참여예술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으며, 한국의 사회참여예술이 보여주는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f93


A : 물론 한국적 예술의 다양성은 일반화 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사회참여예술’의 두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과 이론을 결합하는 지적 능력’입니다. 전자의 특성은 민중미술작가인 홍성담처럼 민주화 운동 기간에 예술 활동을 시작한 한국 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는 작업에 오랫동안 전념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예 한국작가들의 연구에 기반한 프로젝트에서 후자의 특징을 관찰합니다. 많은 젊은 한국 예술가들이 이론적 연구의 결과를 단순히 이론적으로 적용시키는 방식을 넘어 시각적 실천으로 통합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친구인 한국작가 엔 노(Yen Noh)가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프로젝트는 1920년대 동경을 거점으로 다다적인 활동을 전개한 그룹 마보(MAVO)와 한국의 시인 이상의 일본 전위 예술 운동에 관한 것입니다 (사진 6). 저는 고도로 역사적인 이러한 주제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미적 표현으로 변형시키는 그녀의 주목할 만한 능력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Q : 최근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냉전에서 평화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가 앞으로 사회참여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f94


A : 최근 한반도의 냉전 종식을 위해 북한과 남한이 협력하기 시작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많은 한국 현대 미술가들은 냉전시대 이데올로기적 대결이 초래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묘사해 왔습니다. 한국의 예술가들은 이제 냉전 이후 한국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그림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취할 수 있는 역할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예술가는 언제 어디서나 사회에 기여할 수있는 고유한 방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연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 2개월 간의 ACC 리서치 펠로우십이 끝나면 2018년 9 월부터 홍콩 폴리텍 대학교에서 2년간의 박사 후 연구 과정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문화와 탈제국화 관련 주제를 더 깊이 연구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술가로서나 연구자로서 계속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이 두 모습은 저의 활동에서 마치 같은 차의 오른쪽 바퀴와 왼쪽 바퀴처럼 동시에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분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술을 통해 동아시아의 탈식민성을 비판적으로 심문하는 저의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에는 두 가지 역할이 모두 필요합니다. 저의 예술적, 학술적 활동을 통해 장래에 아시아에서 담론적 문화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예술가, 큐레이터,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협업을 시작할 수 있는 대화의 플랫폼 같은 곳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ACC 리서치 펠로우십에 참여하는 것은 이 목표를 위한 중요한 단계입니다!




(사진6) 엔 노, <마보(MAVO)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f9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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