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유민의 의식주







<그림 1> 쿠빌라이 카안



‘델(deel)’은 몽골의 자연 기후에 맞게끔 발전해 온 몽골유목민의 전통 복장이다. <그림 1> 여름에는 비단으로 만든 비교적 얇은 델을 입고, 겨울에는 솜을 넣어 누빈 옷이나 아주 추울 때에는 가죽과 털을 넣은 두텁고 따뜻한 델을 입는다. 특히 몽골 델은 손가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팔이 아주 긴 것이 특징이다. 한편 델은 말을 탈 때도 편한 옷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즐겨 입는 바지도 실은 유목민의 유산이다. 요즘은 몽골인도 양복 등 서양의 옷을 많이 입지만 겨울에는 아직도 델을 더 많이 입는다. 델은 몽골의 혹독한 겨울추위를 잘 견딜 수 있는 최상의 옷이기 때문이다. 허리띠(büs)는 델을 완성하는 것으로 몽골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허리띠를 두름으로써 배 부분은 큰 주머니 역할을 하게 되며,또 허리띠에는 칼, 부싯돌, 쌈지 등 다양한 도구를 매달 수 있다. <그림 2>




<그림 2> 허리띠



몽골인들이 신는 신발은 ‘고탈(gutal)’이라고 부른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가죽장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탈은 말을 탈 때 꼭 필요하다. 정강이뼈나 허벅지가 등자나 말 등에 쓸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고탈의 다른 특징은 신발 굽이 없다는 것이다. 바닥이 평평하기 때문에 등자에 걸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발을 등자에 걸거나 뺄 수 있다.




<그림 3> 몽골 고탈



델을 입고, 부스를 두르고 고탈을 신고 나서 마지막으로 모자인 ‘말라가이(malgai)’를 쓰면 외출 준비가 끝난다. 요즘에는 주로 중절모를 쓰지만, 전통적으로는 남자는 ‘장진(장군) 말라가이’를, 여자는 아주 높은 모자인 ‘복탁’을 주로 썼었다. 몽골인에게 모자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낮은 곳에 두거나 모자를 넘는 행위 등은 용서할 수 없는 무례한 행동이다. 또 뒤집어 놓아서도 안 된다.




<그림 4> 복탁 모자를 쓴 몽골 카툰(황후)



가축을 키우는 몽골인에게 그 가축의 고기(makh)는 최상의 음식이다. 우리가 ‘밥’이 없으면 안 되듯이 몽골인은 고기가 없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고기만 먹거나 많은 양을 먹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몽골에는 원래 꼬치구이 같이 고기를 구워 먹는 경우가 없었다. 고기는 기본적으로 삶아 먹는 것이었다. 오종 가축(五種家畜, tavan khushuu mal)의 젖(süü)은 몽골 유목민에게 최상의 음료이다. 그리고 우유를 끓이면 온도에 따라 수십 가지의 유제품(süün bütegdeekhün)을 만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요구르트인 ‘타락(tarag)’은 조선시대 임금만이 드실 수 있는 타락죽으로 대접을 받았다. 우유(süü), 요구르트(tarag), 치즈(tsötsgii), 버터(byaslag), 아롤(aaruul) 등 유제품이 유명한 곳은 대부분 유목세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5> 또 몽골인이 가장 많이 즐겨 마시는 수태차(süütei tsai)는 벽돌모양의 ‘전차(磚茶)’을 빻아서 물에 넣고 끓이다가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이다. <그림 6>






몽골 음료 중에서 더 유명한 것이 ‘아이락(ayirag)’ 즉 마유주(馬乳酒)라고 알려진 것이다. 6월에서 9월 정도까지 마실 수 있는데, 시큼털털한 맛이 나며 마실수록 당기는 알코올 5~6도의 음료이다. 여름에는 아이락만 10~20 리터씩 마시기도 한다. 아마도 겨우내 먹었던 고기의 독을 제거하는데 좋은 모양이다. 이 아이락을 소줏고리로 증류하게 되면 ‘시밍 아르히(shimiin arkhi)’를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맹물처럼 별 맛이 없다. ‘아르히’는 우리나라 안동소주(아라히~알랭이 또는 아락주)의 기원이기도 하며, 그 어원은 아랍어라고 한다.




<그림 7> 아이락[마유주]



몽골인은 자식이 자라면 분가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게르(Ger)’를 지을 준비를 한다. 빛이 들어오고 통풍이 되는 천창(toono), 지붕을 받치는 기둥(bagana)과 서까래(oni), 접이 벽(hana), 접이 벽 연결을 위한 낙타 목 가죽, 문(haalaga), 깔개인 두꺼운 펠트(esgii), 화로(gal golomt), 침대(or), 농(avdar), 부엌 용구 등을 미리 하나하나 준비한다.






‘게르’는 몽골인에게 우주 그 자체이다. <그림 8> 아이를 낳고 기르고 한 가족의 삶이 온전하게 하나의 게르에서 이루어진다. 바람이 많은 초원에 서 있는 게르는 마치 온갖 외세에도 넘어지지 않는 몽골인의 강인함처럼 어떤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림 9>

그러나 몽골인의 숙명은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이동을 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일 년에도 몇 차례나 이사를 해야 한다. ‘게르’를 짓는 것보다 해체하는 것은 더 쉽고 빠르다. 몇 년에 한 번 이사하는 것도 힘든 우리들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삶이다. 따라서 유목민에게 많은 이삿짐은 불필요하며 무언가를 저장한다는 것은 그 만큼 이동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옛날에는 이웃 부족의 침입이라도 받게 되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것만 가지고 도망가야 했기 때문에 ‘거대한 부(富)’는 오히려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다. 이사를 하려면, 먼저 얼마 되지 않는 가재도구를 꺼내고, 지붕과 벽을 싸고 있던 흰 천과 두꺼운 펠트를 걷어버리면 ‘게르’의 뼈대를 이루는 벽과 지붕만 남게 된다. 지붕과 벽을 연결한 서까래를 하나씩 내리고 천정을 내린 다음에 벽을 해체하면 이사 준비는 끝난다. 그 다음에 소가 끄는 수레나 낙타 등에 균형을 맞추어 짐을 싣고 다음 숙영지로 이동하면 되는 것이다. 자연을 경외하는 몽골인은 반드시 이동하기 전에 기둥을 세웠던 곳을 다시 흙으로 메우고 우유나 수태차(süütei tsai)를 뿌려 ‘어머니’인 땅을 달랜 다음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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