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연구소 자료실







ⓒ 라오스 루앙푸르방의 시장(2009) 박순관



도시에 깃들어 있는 ‘그곳만’의 정신(精神)과 자연과 풍경(경관)에 주목한다. 또한 그곳의 평범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일상(日常)에도 주목한다. 그 도시만의 ‘도시다움’을 이끌어가는 바탕이며 근본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도시들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깊고 오래된’ 정신과 모습이 담겨 있다. 서양의 도시들은 정신적 의미보다는 기술적 성취를, 자연적 흐름보다는 인위적 구성을, 유기적 연결보다는 기계적 질서를, 느리고 오래된 정신적 근본과 실체보다는 새롭고 빠르게 전개되는 물리적 변화와 진보를 더 추구한다. 아시아의 도시들이 품고 있는 가치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와 특성을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아시아의 도시들에서 물리적으로 크고 높고 화려한 모습을 기대하고, 그것을 도시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도 델리(Delhi)에서의 어느 날, 구(舊) 시가지의 어느 한 곳을 찾았다. 그 날의 그 거리는, 늘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로변의 허름한 상점들에서는 상인들의 손짓과 외침이 드세게 들려온다. 거리는 현지인들, 관광객들, 인력거들, 자전거들, 짐꾼들의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그들 속에 섞여 흐르던 중에 뭔가가 내 몸을 스친다. 그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거닐던 ‘소’의 꼬리다. ‘소’는 힌두문화에서 종교적으로 신성한 동물(아이콘)이다. 최소한 이 거리에서만큼은 사람과 동등한(@f16) 대우를 받는 듯 하다. 요즘 세상에서, 이곳에서만 가능했던 경험이다.




ⓒ 인도의 구도심 빠하르간지(2007) 박순관



미로(迷路)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막힌 듯 이어진, 끝을 짐작하기 힘든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차분하고 조용해진다. 도시의 이면(裏面)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욱한 연기와 특유의 냄새가 진하게 퍼져 있다. 도심(都心) 곳곳에서, 인도 사람들의 생활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과장과 가식이 없는, 꾸밈없이 드러나는 사람들의 생활상은 그 도시의 진정한 모습을 대변한다. 반듯하고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깨끗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도시문화의 깊이와 정감이 강하게 풍겨 나온다. 그 속에서 이곳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과 문화적 생활양식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이 몸으로 자연스레 느껴지기 때문이다. 허름한 거리에서 가난한 삶의 굴레에 갇혀 있지만, 이곳 사람들이 이어가고 있는 삶(생활)의 영혼과 실체가 하나로 묶여 이어지고 있는 도시로 기억된다.




ⓒ 인도 자이푸르 네루 기념관(2015) 박순관



인도의 또 다른 도시가 떠오른다. 델리에서 남서 방향으로 약 2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 자이푸르(Jaipur)다. 그 도시의 곳곳에 붉은색으로 마감된 건축물들이 꽤 많이 들어서 있다. 그런 이유로, ‘핑크시티’로 불린다.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전체 도시를 여러 개의 사각형 모듈로 분할하고, 그 안에 다양한 성격의 도시공간을 담았다. 얼핏,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격자형 패턴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도시를 만들고 지속해 가는 이곳만의 독특한 정신과 관점이 응용되어 있다. 옛 고대의 인도인들이 상상했던 우주관(세계관)이 그대로 땅 위에 구현되어 있다. 우주를 의미하는 사각형을 일정한 수학적 비율로 나누어 도식화 시킨 개념(만다라)을 도시계획의 기본형으로 삼았다. 아마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가장 관념적인 특징을 지닌 도시일 것이다. 현대도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특이한 사례다. 그 도시에 지어지는 건축물들 중에는,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설계된 것도 있다.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가 찰스 꼬레아가 설계한 네루기념관이 그렇다.




ⓒ 라오스 루앙푸르방의 딱밧행렬(2015) 박순관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서의 어느 날, 이른 아침 메콩 강변을 따라 늘어선 도시를 걸었다. 도시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스님들의 탁발(딱밧) 행렬이다. 도시의 아침 풍경이 경건해진다. 도시라기보다는, 자그마한 마을 같은 이곳에 무려 80여 개의 불교사원이 세워졌다. 사원들 사이로 이어진 골목길 곳곳에는 오래된 전통가옥과 식민풍의 저택들이 어색하게 이어져 있다. 도시 옆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메콩 강의 물결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너무 흡사하다. 아마도 아시아에서 가장 느리게 흘러가는 곳들 중의 하나로 꼽힐 것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삼고 신앙에 의지하며 느린 시간 속에서 여유롭게 흘러가는, 그러면서도 일상 속에서 경건함을 느낄 수 있었던 도시로 각인된다.

태국 방콕에서의 어느 날, 도심을 가로지르는 짜오쁘라야 강에서 도시의 중심부와 강변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본다. 이 강은 방콕의 지리적 특성과 도시계획적 구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심 내의 많은 수로(水路)가 이 강으로 연결되면서 수상교통의 주축 역할을 담당해 왔다. 강을 따라, 웅장한 불교사원과 화려한 왕궁, 그리고 고층 호텔과 현대식 건축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어져 있다. 불교에 기반을 둔 전통경관과 현대적 이미지가 섞여 있다. 350개에 달하는 불교사원들과 거리 곳곳의 불교장식은 방콕의 도시경관을 지배하는 강력한 요소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적 무게감과 이미지가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는 다시 현대건축의 창작이념으로 연결되면서 방콕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역사ㆍ문화적 생기(生氣)로 작동하고 있다.




ⓒ 방콕 짜오쁘라야 강변 풍경(2012) 박순관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서의 어느 날, 이른 아침 메콩 강변을 따라 늘어선 도시를 걸었다. 도시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스님들의 탁발(딱밧) 행렬이다. 도시의 아침 풍경이 경건해진다. 도시라기보다는, 자그마한 마을 같은 이곳에 무려 80여 개의 불교사원이 세워졌다. 사원들 사이로 이어진 골목길 곳곳에는 오래된 전통가옥과 식민풍의 저택들이 어색하게 이어져 있다. 도시 옆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메콩 강의 물결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너무 흡사하다. 아마도 아시아에서 가장 느리게 흘러가는 곳들 중의 하나로 꼽힐 것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삼고 신앙에 의지하며 느린 시간 속에서 여유롭게 흘러가는, 그러면서도 일상 속에서 경건함을 느낄 수 있었던 도시로 각인된다.

태국 방콕에서의 어느 날, 도심을 가로지르는 짜오쁘라야 강에서 도시의 중심부와 강변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본다. 이 강은 방콕의 지리적 특성과 도시계획적 구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심 내의 많은 수로(水路)가 이 강으로 연결되면서 수상교통의 주축 역할을 담당해 왔다. 강을 따라, 웅장한 불교사원과 화려한 왕궁, 그리고 고층 호텔과 현대식 건축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어져 있다. 불교에 기반을 둔 전통경관과 현대적 이미지가 섞여 있다. 350개에 달하는 불교사원들과 거리 곳곳의 불교장식은 방콕의 도시경관을 지배하는 강력한 요소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적 무게감과 이미지가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는 다시 현대건축의 창작이념으로 연결되면서 방콕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역사ㆍ문화적 생기(生氣)로 작동하고 있다. 아시아의 도시들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모습과 의미가 담겨 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다. 도시는 성장한다. 더 넓어지고, 더 높아지고, 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곳의 원래 모습과 의미는 얼마나 남게 될지, 얼마 동안이나 이어질지, 그리고 얼마만큼 기억될지 사뭇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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