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핑크색이다

흑과 백, 적과 청이 아닌







최민화 (b. 1954, 한국 서울)
<어느 무명 청년의 죽음 I> (1987-1989)
캔버스에 유채, 136 x 74 cm
작가 소장



전시 제목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가 제안하는 베트남과 베를린은 60년대 흥기한 서구 신좌파가 1989년 베를린 장벽 해체이후 ‘역사의 종언’이란 말장난 앞에서 무너진 기호이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의 냉전체제가 만들어낸 억압적인 사회는 전후세대들이 청년기를 맞이하는 60년대 내내 대공세에 시달린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아시아의 약소국가 베트남에서 벌인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 1967년 세계혁명을 꿈꾸며 볼리비아 정글에서 CIA에 의해 사살된 체 게바라, 소련에 대항한 프라하 인민들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향한 부르짖음, 그리고 이 모든 운동들의 총화라 할 수 있는 파리의 68년 5월 혁명이 그것이다.


60년대 세대들의 급진적 상상력은 이후 모든 청년세대들에게 줄곧 영감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재작년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60년대 세대들의 영향력이 21세기가 20여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얼마나 강고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Bernard Rancillac (b. 1931, Paris, France)
Bloody Comics (1977)
Acrylic on canvas, 195.5 x 300 cm
© Musée des Beaux-Arts de Dole, cl. Jean-Loup Mathieu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는 미국이 아닌 프랑스 중심의 미학적 헤게모니를 쥐려는 기호이기도 하다. 전시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 보편적 인권으로 자리 잡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비서구권 인민들의 대응을 서구 리얼리즘 회화양식으로 표현한 작품로 가득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급격하게 변한 세계 질서 속에서 특히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20세기 전체를 지배한 미국의 정치적 식민지국가가 아닌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등 19세기 서구 식민지 국가들의 작품이 전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미국의 앤디 워홀과 라우센버그, 급진적 흑인인권운동단체인 블랙팬더당(Black Panther Party)의 포스터를 제외하곤 대개 19세기 서구 식민지국가의 작품이다. 이는 마치 조셉 콘래드가 콩고강을 거슬러 오르며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비극을 묘파한『암흑의 심장』을 메콩강으로 옮긴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 패전했음에도 베트남 인들에게 문명을 전파했다며 여전히 옛 제국주의 영화에 젖어있는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의 회환을 묘사한 장면과 오버랩된다.


전시장의 베르나르 랑시악, 에로, 자크 모노리 등 60년대 프랑스 신구상회화(Nouvelle figuration/ 또는 Figuration narrative)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른 작품들을 배치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우리에게도 프랑스《신구상회화전》이 1982년 서울미술관에서 전시되면서 당시 미술의 사회적 정치적 발언에 힘을 모으던 작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전시가 서구 미술운동과 비서구권 미술운동간의 상호 교섭관계 등을 추적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 다를 수 밖에 없는 각국의 조건들은 사라진 채 정치적 주제에 대응하는 회화라는 기획은 작품은 구체적 상황들을 지시하고 있는데 기획은 추상적 범주화를 의도하고 있는 모순된 면을 보이고 있다.


또, 비서구권 작가들에게 미국이든 프랑스든 다 같은 제 1세계 국가인데 무슨 상관이랴만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 비서구권 미술도 이용당하고 있지 않나 하는 씁쓸함을 지우긴 힘들다. 자기의 언어로 자기 목소리내기로써 작품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서구 리얼리즘 미술사조와 어울리는 작품들을 나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하나에 이런 고민이 과잉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지만, 전시가 이루어지는 곳은 광주이고 아시아문화전당이기 때문에, 나 역시 제3세계 시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이식된 근대와 식민의 기억(띔)속에서 여전이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미술 장르와 다르게 회화만이 가진 힘, 내러티브로써의 정치적 역할, 매체 고유의 속성이 초점이라기 보단 20세기 서구가 전파한 진보적 예술에 동조하는 회화의 영향력은 어떠했는가를 회고하는 전시로 보인다. 20세기 비서구권 인간들의 고통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묻는다거나, 그들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회화는 어떤 감응을 가지고 시민들과 호흡하였는지에 대한 맥락들은 설명되거나 제시되지 않고 있다. 현실과 유리된 하얀벽(white cube)에 예술품으로만 전시되는 것을 거부하고 거울시트가 부착된 반사벽에 설치된 작품으로 관람객들의 편안한 관람을 방해하려는 기획자의 의도는 높이 살만 한 것이다. 그러나, 전시 구성 저체가 자체가 회고전에 가까운 후일담의 성격이라 그 불협화음은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베트남과 베를린의 작가들은 정치와 예술의 역학관계에서 탁월한 미학적 성취를 이뤄낸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말한 프랑스 신구상회화 작가들부터, 비서구권 작가들의 작품, 노원희와 최민화 김정헌과 민정기 신학철 등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주요한 성과들까지 두루 망라하고 있다.


랑시에르는 1996년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역사에 직면해서》전시 카달로그 서문인 「역사의 의미와 형상들」에서 아우슈비츠 이후 아도르노가 천명한 예술의 죽음에 대해 반박하며 다음과 같이 적는다. ‘보기를 허락하지 않는 것을 보고, 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림의 속성이다’라고.




신학철 (b. 1943, 한국 김천)
<가투> (1982)
캔버스에 유채, 53 x 45.5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나는 ‘베트남과 베를린’ 전시에서 지난 세기 아시아의 정치미술을 한 눈에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베트남 반전운동과 베를린 장벽 해체가 가리키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식민지, 전쟁, 군부독재, 민주화 운동 등 아시아 각 국이 처한 정치상황에 대응하는 미술(회화)은 어떤 작품들일까라는 궁금함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일부 미술관(White cube)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통용되던 미술문화에 반발하여 미술의 정치적 발언에 주목한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과 차이점을 비교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전시장에 나온 프랑스 신구상회화나 민중미술운동은 기본적으로 당시 주류를 차지하던 추상 중심의 화단과 다르게 일반 대중과 소통을 강조한 구상 중심의 미술흐름이기도 하다. 아니라면 아예 정반대로 ‘베트남과 베를린’이 가리키는 60년대를 지나며 급변한 서구 정치 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베트남 반전운동은 서구 60년대를 상징하는 기호이지 아시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작품들-이미지-은 결국 이 비참한 현실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는 예술밖에 없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반쪽짜리이다. 거대한 정치사회적 억압에 대항하는 주제 말고 여성, 소수자 등 새로운 해방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은 없다. 여전히 흑과 백, 적과 청 밖에 없는 권태로운 전시이다. 핑크가 빠진 전시이다.


혁명은 흑과 백, 적과 청이 아닌 핑크색이라는 것을 우린 지금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지난 촛불광장의 언어들을 정치에게 빼앗겨 버리고 나서 불고 있는 핑크색 혁명, 지난 시기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 문화와 기존의 질서를 극복하고자 하는 핑크의 바람은 1980년 광주 이후 구토와 실어증으로 세계와 맞섰던 예술가들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한재섭 (미술사)
인류학과 미술사학 전공,『신학철의 역사화 연구 :1980년대 한국근·현대사 연작을 중심으로』,
인천아트플랫폼 학예연구팀장 역임, badland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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