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대치와 ‘늪’을 넘어 우리는 자유롭게 ‘휘파람’을 부르고 싶다

ACC FOCUS 〈파킹찬스 2010-2018>展 박찬경 작가 인터뷰









ACC FOCUS_〈파킹찬스 2010-2018>展 제작 작품 《반신반의》(2018)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전도서 1장 2절~7절』

분단 상황 속 남북관계와 이중스파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 《반신반의》(2018)를 전시장 안 검은 장막에서 보고 나오면서, 영화 속 탈북 여성이 읊조리는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라는 성경 구절이 머리 속을 휘젓는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 분단 상황과 지난 10년간의 남북 경색 그리고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팽팽한 긴장감, 최근 급격히 불어오는 남북한 대화 국면 속에 이 바람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묘한 슬픔과 감회에 빠져든다. 특수 제작한 세트장에서 남과 북은 작은 벽과 그 중간 좁은 공동구역을 하나 두고, 밀착한 카메라 시선 아래로, 위와 아래, 좌와 우를 번갈아 가며 이중의 세계를 드러낸다.



파킹찬스, 격세지감 DECADES APART (2017), 3D 비디오 및 몰입형 사운드 단편영화, 17분 53초, 까르띠에현대미술재단 커미션, ㈜모호필름 제작


전시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파킹찬스가 제작한 신작을 포함한 총 6편의 중단편 영상과 미공개 사진으로 구성된다. 영상은 박찬욱 감독, 박찬경 작가의 첫 공동 작품이자 최초의 아이폰 영화 《파란만장》(2011)을 비롯해, 판소리 스승과 제자의 하루를 다룬 《청출어람》(2012), 서울을 주제로 한 크라우드 소싱 다큐멘터리 《고진감래》(2013),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를 몰입형 3D 사운드-이미지 작품으로 재창작한 《격세지감》(2017),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ACC가 지원한 《반신반의》(2018)가 소개되고 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이 영화 촬영 현장이나 일상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 작품 70여점도 첫 공개되었다. 이밖에 파킹찬스가 제작한 가수 이정현의 뮤직비디오 《V》(2013), 박찬욱 감독의 《미술관 연작》과 풍경·정물 사진 70여점, 박찬경 작가의 《세 개의 묘지》, 디지털 이미지와 사진 라이트박스로 전환한 《소년병》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건축가 정의엽이 전시에 적합한 가변적 구조물들을 설치했다.

전시장에는 ‘휘휘-호호호~’ 북한 대중가요 《휘파람》이 느리고 높은 음조로 흐르고 있었고, 작품 《소년병》은 희미한 불빛 속에 조금씩 소년의 이미지가 움직이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전시장 밖을 나오면서, 3D 안경을 끼고 《공동경비구역 JSA》(1999)를 재창작한 《격세지감》(2017) 마지막 장면인 판문점 사진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파킹찬스 2010-2018>展 박찬경 작가를 만나다






Q : ‘파킹찬스’는 영화감독 박찬욱과 현대미술 작가 박찬경 형제가 협업하며 공동 작품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이름입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파킹찬스 2010-2018>展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박찬경 : ‘파킹찬스’는 형인 박찬욱 감독하고 저하고 같이 공동 작품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에요. 이름이 저희가 박(“Park”)과 찬(“Chan")을 돌림으로 쓰고 있어요. 그래서, ‘파킹찬스(PARKing CHANce)’ 주차 기회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자유롭게 창작하는 것은 서울에서 주차할 기회를 찾는 것처럼 어렵다는 뜻도 있지만, 또 그만큼 반가운 일이기도 해요. 항상 함께 하는게 아니라 ‘주차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공동 제작을 해요. 《파란만장》이라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단편 영화 작품을 시작으로 해서,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을 이번에 전시하게 되었어요. 다양한 네트워킹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면서,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제작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형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큰 장르 영화를 하다 보니 이윤으로부터 자유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하고, 저는 미술관객이 아닌 조금 더 대중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기회지요. 장르와 매체 이윤에 구애 받지 않고, 두 사람의 자유로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해가 맞아서 함께 작품을 하고 있어요.

〈파킹찬스 2010-2018>展의 시작은 여기 김성원 감독님이 ACC FOCUS라는 새로운 작품을 제작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파킹찬스’를 초대해 주셨어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파킹찬스’가 심각한 작품도 있지만, 영화와 미술 사이에 실험적이고 장르 혼합적인 성격이 ACC FOCUS라는 내용에 맞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Q :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생기게 된 데에는 광주라는 특수한 환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이번에 신작 《반신반의》 그리고 《소년병》을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박찬경 작가가 분단 상황을 다룬 작품이 처음은 아닌데요.《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1997), 《세트》(2000), 《파워통로》(2004), 《비행》(2005), 《신도안》(2008), 《그날》(2011), 《갈림길》(2012), 《만신》(2013) 등 분단 상황과 한국사회를 반추하는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반신반의》는 남북한 경색 국면 속에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던 지난해 9월 제작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작품 기획할 때와 지금 남북한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박찬경 : 《반신반의》를 직접 착상을 한 것은 최근에 탈북 여성 중에 VJ를 하다가 다시 북한으로 가서 거기서 방송을 한 분이 계세요. 그 분의 행적을 보면서, 아 남북한 관계가 예전과 다르구나. 양상이 다르구나. 그리고 미디어가 관련 되었고, 그래서 그런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자료를 많이 보면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당시에는, 아, 남북관계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사일을 싸고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금 보면, 지금 상황과는 다르죠. 그래서 좀 (웃음) 당시에는 지금까지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환경과 다른 조건에서 전시를 보여 주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북한의 관계가 영구적으로 평화가 오지 않는 한 이런 상태가 계속 될 것이라 봅니다. 물론 좋아지길 바라지만. 그래서 꼭 굳이 현재 상황에 맞춰서 보여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 작품에서 물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강’이라고 하면, 남북 같은 분리된 세계를 떠올렸지만, 한국현대사를 좀 더 지나오면서, ‘물’은 단순한 분리를 넘어서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박찬경 : 《파란만장》도 그렇고 물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들이 많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물은 영화적으로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요. 반사라던가, 물속으로 들어간다거나, 수중의 풍경이라든가. 이번 《반신반의》에서는 제가 압록강을 건너는 탈북자들의 다큐멘터리나 영상들을 많이 봤어요. 보면서 아 정말 목숨을 걸고 너머 오는 것이 너무 적나라게 드러나고, 많은 탈북자들이 그 체험을 이야기 하더라구요. 죽을 것 같은 정말 생명을 걸고 건너오는 그래서 중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어요.

핵심적인 장면은 세트 중간 왔다갔다 하는데, 좁은 복도에서 물이 차올라서, 남북사이의 관계 같은 것을 비유할 수 있었어요. 그 사이에 일상의 골목처럼 바뀌다가 물이 차올라서 물이 흘러내리기도 하고, 물이 떨어지기도 하구요. 원래는 모티브를 ‘거울과 늪’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남북한이 거울을 비추면서 한쪽에서 무엇을 하면 또 이쪽에서 무엇을 하고 이렇게 항상 대응하도록 되어 있잖아요. 거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한편으로 물과 늪 같은 굉장히 냉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고통이나 심연 그 두 가지를 대조하는 것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쪽에는 냉정한 거울이 있고, 한쪽에는 늪이 있구요. 남북한을 잘 비유해주는 것 같아요.

세트를 지은 것은 영화 촬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중요한 것은 세트가 남북한 취조실에 붙어 있어서 카메라가 밀착을 하지요. 먼 곳에 있지만, 가까이에 있고, 정말 밀착된 것 같은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옆에 붙어 있는 것처럼 하기 위해 구상했어요.





박찬경, 소년병 CHILD SOLDIER (2017-2018),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 35mm 필름 연속 상영, 가변크기, 16분 9초, 3개의 사진 라이트박스(각 84x120cm), 작가 제공



Q : 《소년병》을 보면서, 최근에 북한을 방문한 우리 정부 당국자를 환영하는 사진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 떠올랐습니다. 독재로 각인되어 왔던 북한이 보여준 환대의 이미지는 매우 이질적인 느낌이기도 했거든요. 


박찬경 : 《소년병》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생각할 때, 북한은 굉장히 정치적이고 강하고 이념적인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어느 정도는 사실이죠. 그런데 만약에,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 일상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소소한 일상도 있을 것이고. 이념과 정치로 다 포장할 수 없는 면면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것들도 우리에게 언론을 통해 노출되면 좋은텐데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구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인민군들이 내려왔는데, 인민군들이 너무 어리고 순진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셨어요. 그것이 겹쳐지면서, 북한을 만약에 이념이나 정치 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묘사한다면 그것이아말로 불온해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너무 강한 이미지를 접하잖아요. 약한 이미지. 북한에 대한 약한 이미지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서 해본 작품이에요. 소년병이 등장하는데, 야산을 왔다갔다 배회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 치고 책도 보고 그런 장면을 쉼 없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Q : 조금 고통스럽기도 하더라구요. 총에 맞았는데 스스로 물에서 씻더라구요.


박찬경 : 귀신이지요. 인민군 귀신. 소년병 귀신.





Q : 어머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들으니, JSA 북한군 송강호 이미지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났어요.


박찬경 : 《격세지감》은《JSA공동경비구역》의 마지막 판문점 장면을 원래 2D인데, 3D로 입체값을 줘서 보여줘요. 그만큼 미디어가 변화한 것을 보여주고, 말그대로 격세감을 보여주는 것이죠. 영화에 대한 격세감이기도 하고, 분단 상황이 달라진 것에 대한 격세감이기도 하구요.


Q : 이번 전시를 위해 건축가 정의엽은 유동적이고 임시적이며 가변적 가능성을 상징하는 독특한 건축 구조를 제안했다고 들었습니다.


박찬경 : 저에게 흥미로운 것은 이 공간 자체가 전시장으로만 쓰도록 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서 건축이 필요했어요. 건축가를 찾다가, 이 분이 한 다른 건물들이 흥미로워서 함께 작업했습니다. 개방과 폐쇄도 있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영화를 보여주는 공간 두 개가 이어져있고, 마치 실타래가 풀어지는 것 처럼요. 영화 필름을 보면 사진들이 있잖아요. 프레임으로 하나씩 만들어져 있어서, 그것이 영화의 사진의 관계를 생각할 수도 있고요. 보통은 깔끔하게 마감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내장재를 보이게 해서 전체를 드러내 보여준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Q : ACC FOCUS〈파킹찬스 2010-2018>展을 방문할 관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박찬경 : 뮤지엄 전시하면 뭐랄까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여전히 문턱을 높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희들의 작품은 어려운 작품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볼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그래서 문턱을 느끼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의미가 뭘까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자유롭게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사진 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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