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껌. "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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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1991년 겨울 방학 때 대만 타이난(臺南)에 있는 성공대학에 겨울 연수를 갔었다. 그곳 버스정류장에서 옥수수를 팔고 계시는 할머니가 무언가를 열심히 씹고 계셨는데, 입술은 빨간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붉고, 치아는 부식이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비단 그 할머니뿐만 아니라, 주위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분이 잎에 둘러싸인 도토리 크기의 녹색 열매를 들고 계셨는데 그렇게 열심히 씹다가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전혀 거리낌 없이 붉은 침을 뱉어서 길거리는 그들이 뱉어 낸 붉은 침이 피를 토한 것처럼 곳곳에 물들어 있어서 비위생적인 것을 떠나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빈랑 나무: 양영자©








빈랑 열매: 양영자©

과 선배는 그 열매가 빈랑이라고 가르쳐 주며 한번 씹어보라고 권했지만, 핏빛 침의 공포에 선뜻 맛을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빈랑은 무엇일까? 빈랑은 빈랑나무 열매로 빈랑자라고 불리우며,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하지만 대만 뿐 아니라 현재 전 세계 십 분의 일 가량 인구의 사랑을 받는 기호식품이다. 대만에서는 “대만의 껌”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있으며 칭자이(菁仔)라고도 불린다. 빈랑은 아시아. 아프리카. 인도양. 태평양의 연안 및 섬, 그리고 남도어족 민족의 세력확장지역에 두루 심어졌으며, 빈랑을 씹는 풍속은 이미 2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청나라 강희년(康熙年)에 대만지부 (台灣知府) 채육영(蔣毓英)이 쓴『대만부지(台灣府志)』의「물산지(物產志)」에 따르면, 남녀불문하고 모두 씹기를 즐겼으며 특히 분쟁을 해결하거나 환심을 살 때 손님 접대를 위해 정성껏 대접하는 과일로 적혀있다 .









빈랑자 차체의 맛은 쓰고(苦) 달고(甘) 떫고(澀)매운(辛) 맛이 함께 어우러진 오묘한 맛을 지니고 있다. 원래 빈랑은 중요한 약물 중 하나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음식 소화를 돕고 부종과 담(痰), 기생충을 없애고 사체(死體)에서 옮기는 병을 치료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많은 한의사는 이를 질병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데, 씹다 보면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가 몽롱해지는 이유가 빈랑 속에 들어있는 약한 환각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일까? 송대 문인인 소식(蘇軾)이 해남(海南) 유배 시절에 빈랑을 먹고 있는 현지 여인을 보고 “두 볼의 홍조가 아름다움을 더하니, 그대가 빈랑에 취한 줄 누가 알랴 (兩頰紅潮增嫵媚,誰知儂是醉檳榔)”라는 아름다운 시구를 남겼다고 한다. 이러한 빈랑의 각성효과 때문에 택시나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졸음 방지용으로 많이 찾는다.


이렇듯, 대만 사람들의 빈랑에 대한 사랑과 많은 생산량으로 빈랑 사업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갔는데, 이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직업군이 있으니, 이름하여 빈랑서시(檳榔西施) 라고 부른다. 서시는 중국의 4대 미녀 중 하나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월나라 미인의 이름이다. 대만의 거리 곳곳에서 앞 전면이 통유리로 만들어진 가건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통유리로 만들어진 가게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분홍색 불빛, 바 의자에 앉아 있는 손님을 기다리는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한 젊은 아가씨, 그가 빈랑서시다. 빈랑탄(檳榔攤)이라고 불리는 가게는 그 분위기만으로는 흡사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여지없는 특수 업종 영업장소의 분위기다. 빈랑서시는 이곳에서 빈랑을 제작, 판매한다. 이렇게 빈랑을 파는 곳은 야시장, 주택가나 상점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특히, 고속도로 진입로 주변이나 트럭의 왕래가 빈번한 도심과 시골의 경계를 이루는 도로가, 택시정류장을 따라가다 보면 예쁜 얼굴과 늘씬한 몸매의 미녀들이 아슬아슬한 옷차림으로 빈랑을 제작, 판매 및 호객행위를 한다. 이는 점점 대만의 새로운 기층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이를 보기 위해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기현상이 나타났으며 빈랑가게는 관광명소로서도 유명세를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자극적인 옷차림에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타이페이 인근의 타오유안 카운티는 빈랑서시가 가슴과 엉덩이, 배꼽 등을 가리지 않으면 처벌 되도록 하는 조례을 발표했으며, 2014년부터는 빈랑을 씹을 때 나오는 붉은 침을 거리에 뱉을 경우 벌금을 내야 하며 중독치료도 받도록 조처를 했다. 사실, 빈랑은 중독성이 있고 빈랑이 염료로 사용될 만큼 색깔이 진하기 때문에 빈랑을 습관적으로 씹는 사람들은 치아와 잇몸 질환에 쉽게 노출이 되는데 빈랑이 구강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



빈랑서시 출처: 위키미디어


지속되는 대만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빈랑의 재배면적은 1996년 이래 20년 동안 꾸준히 감소해서 12,719헥타르가 감소했으며, 같은기간 빈랑의 생산가치는 2014년과 2015년에 반짝 증가 추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역시 꾸준히 감소해 오고 있고, 또한, 빈랑 사업의 꽃인 빈랑서시 노출에 대한 벌금부과와 과도한 경쟁으로 예쁜 얼굴과 늘씬한 몸매의 젊은 빈랑서시는 이제 평범한 복장과 넉넉한 몸매의 빈랑서시로 변모해 가고 있다.



빈랑을 파는 가게들: 출처: 위키미디어

빈랑을 구입하는 운전사들: 양영자©


그러나,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7만여 가구에 달하는 빈랑 재배농가와 6만여 명의 빈랑서시를 포함한 10만여 명의 빈랑 상인들, 아울러 관련 업종 종사자들까지 포함할 때 “녹색 금” 이라 불리는 빈랑이 25만여 명을 먹여 살리는 대만 제2위 농산물임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장거리 운전자나 야외에서 일하는 육체 노동자들의 경우 빈랑이 주는 각성효과를 포기하기 쉽지 않으며 커피, 담배 등과 마찬가지로 기호식품의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어 완벽하게 퇴출하기에는 아직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양영자(대만 실천대학교 국제경영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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