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신화 속의 선악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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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몽골인들도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모양이다. 그들은 신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몽골 신화에는 신화의 법칙대로 선악을 대변하는 두 부류의 상반된 속성의 신이 등장한다. 세상과 인간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한 보르항(Burkhan, 신) 또는 텡게르(Tenger, 천신)가 한 축이고, 그가 만든 피조물을 틈만 나면 없애려 하는 추트구르(Chötgör, 마귀) 또는 숄마스(Shulmas, 마귀)가 반대편에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알타이 신화 전당에 나오는 천신(天神) 윌겐(Ülgen)과 지하세계의 주인 에를릭(Erlik)에 비견되는 존재가 이들이다. 전자는 창조자이자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선함의 화신이고, 후자는 파괴자이자 사람을 괴롭히는 악함의 대변자다. 또 한 쪽이 고귀한 천상의 존재라면 다른 쪽은 음습한 지하세계의 주인이다. 이러한 얼개는 몽골 신화를 관통하는 일관된 논리다. 그래서 몽골인들의 머릿속에는 두 부류의 존재가 선과 악의 본보기로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신화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런 통상적인 선악의 경계가 무색해진다. 바이칼 호 주변의 몽골계 부랴트인들 사이에 전승되는 신화에는 이런 얘기가 전해진다.



먼 옛날 아직 세상이 생겨나기 전의 일이다. 에세게 말란 텡게르(Esege malaan tenger), 오이 하리한(Oi khr'khan), 아라한 슈드헤르(Arakhan shüdkher)라는 세 명의 신이 세상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셋의 결정에 따라 슈드헤르가 바깥 바다[外海] 먼 곳으로 나가 입에 한 입 흙을 물고 왔다. 셋은 합심하여 슈드헤르가 가져온 흙으로 평평하고 매끈한 세상을 만들었다. 일을 마치고 슈드헤르가 자기의 몫을 달라고 했으나 에세게 말란 텡게르는 그에게 조그마한 땅뙈기는커녕 앉을 자리도 안 주고 겨우 막대기를 꽂을 만한 땅을 주었다. 슈드헤르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땅에 막대기를 내다꽂자 그 구멍에서 혐오스런 벌레가 줄지어 나왔다. 이를 본 에세게 말란 텡게르가 불쏘시개로 구멍을 틀어막아 벌레가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 신화에서 셋은 모두 창조신이다. 다만 그 역할로 보아 에세게 말란 텡게르가 제1창조신이고, 슈드헤르는 제2창조이나 제3창조신, 즉 협력자다. 그는 대지의 터전이 되는 흙을 가져왔으니 사실 세상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공로에 훨씬 못 미치는 땅밖에 받지 못했다. 의당 분개할만하고 그래서 땅 속에서 벌레들이 나오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또한 슈드헤르가 벌레의 주인, 즉 지하세계의 주인임을 암시한다. 슈드헤르는 추트구르의 부랴트 사투리다. 추트구르가 누군가? 몽골 신화에 등장하는 공인된 악의 화신이자 지하세계의 주인이다. 결국 위의 신화는 악의 화신인 추트구르가 창조신(텡게르)의 불공정 행위에 불만을 품고 땅 속으로 들어간 피해자임을 암시한다. 그의 악한 속성 또한 본성 때문이 아니라 창조신 때문이라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창조신의 나쁜 버릇은 세상을 창조한 뒤에도 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 살 때 익힌 버릇이니 고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에도 공동으로 만든 창조물을 가로채는 부정을 저지르지만, 그 대상은 추트구르가 아니고 또 다른 악의 화신 숄마스다. 싸움은 몽골의 전통악기 에헬(Ekhel, 서몽골에서는 마두금을 에헬이라 함)을 놓고 벌어졌다.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馬頭琴): 이평래 ©


에헬은 원래 공인된 악의 화신 숄마스의 작품이다. 어느 날 숄마스가 에헬을 만들어 직접 켜보니 소리만 요란하고 도무지 악기 같지 않았다고 한다. 숄마스는 궁리 끝에 보르항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물었다. “내가 에헬을 만들었소. 그런데 소리만 요란하고 도대체 가락이 나오지 않으니 무슨 방법이 없겠소?” “아, 자네는 에헬의 현(弦)에 무른 송진을 너무 많이 발랐네. 굳은 송진은 적게 발랐고. 그래서 소리가 그 모양이라네.” 숄마스는 보르항이 가르쳐 준대로 무른 송진을 긁어내고 굳은 송진을 바르니 정말 깨끗한 소리가 났다고 한다.

에헬이 완성되기까지의 공헌도를 기준으로 하면 분명히 숄마스가 제1창조자이고, 보르항은 이른바 협력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보르항이 이 악기를 자기가 만든 것처럼 자기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선사한 데서 사단(事端)이 생겼다. 요즘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이 개발한 신기술을 슬쩍 베껴 먼저 상품화 한 것이다. 톱쇼르(Tovshuur, 2~3현의 서몽골 악기)라는 악기를 만들 때도 똑같은 비행이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보르항은 숄마스가 만든 톱쇼르를 숄마스의 악행을 막고 그의 힘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쓰도록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서부 몽골 지방에서 톱쇼르를 연주할 때 서사시를 음송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쯤 되면 숄마스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가 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창조자에게 적대하고, 창조자의 작품인 인간과 세상을 파괴하려고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두 이야기는 좋은 직함을 죄다 꿰차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늘 존경받는 보르항의 사악한 행위가 숄마스를 영원한 악의 화신으로 만들었음을 말해준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야기이자 선악도 결국 상대적이라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지하세계의 주인 에를릭 칸(Erlig khan, 염라대왕)의 선행이 미담처럼 회자되는 몽골 이야기도 있다.







옛날 몽골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갔다고 한다. 소호르 타르바(Sokhor tarva)라는 청년도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해매고 있었다. 가족들은 도망가고 홀로 남겨진 청년의 영혼은 숨이 끊기기 전에 육신을 떠나 지하세계의 주인 에를릭 칸에게 갔다. 에를릭 칸은 청년의 영혼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너는 아직 육신이 멀쩡한데 무슨 일로 여기 왔느냐?” “제 육신은 죽은 것으로 간주되어 버림받았기 때문에 목숨이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왔습니다.” 청년의 온순한 태도는 에를릭 칸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너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네 육신으로 돌아가거라! 가기 전에 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가져가거라!” 거기에는 기쁨, 슬픔, 행복, 민담, 노래, 전설 등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청년의 영혼은 이중에서 민담을 갖고 지상으로 돌아와 길바닥에 버려져 있던 자신의 몸으로 들어갔다. 눈은 까마귀가 파먹은 상태였다. 청년은 소경이 되었지만, 앞날을 예언하고, 몽골 각지를 돌아다니며 민담을 구연하고,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선행을 베풀며 생을 마쳤다.

청년의 착한 마음씨가 그를 능력자로 만든 1차적 원인이지만, 이를 알아준 에를릭 칸이 없었다면 그는 한 번으로 죽고, 그 뒤 사람들에게 착한 일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몽골 신화는 무섭고 혐오스럽고 음습한 지하세계의 주인을 선행의 장본인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몽골 신화에는 아무리 좋은 선(텡게르, 보르항)이라도 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아무리 나쁜 악(추트구르, 솔마스, 에를릭 칸)이라도 선의 광명이 감춰져 있다는 독특한 철학적 사고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옛 몽골인들이 이해한 인간과 세상에 대한 평가다. 이분법적 사고와 통념에 대한 경고이자 악행과 비행의 근본을 공인된 악마가 아니고, 공인된 천신이자 힘센 존재에서 찾고 있는 독특한 세계관의 발로라고 보면 무리한 해석일까? 거대한 국가와 괴물 같은 사회, 힘센 사람들이 춥고 배고픈 민초들을 그들의 본성에 반하여 비행과 악행과 나락으로 내모는 세상사를 보면, 이러한 해석이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평래(한국외대 몽골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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