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겨울바다를 그리워하는 '나'를 위한 시간



2017년 2월 겨울. ‘나’
차가운 바람에 나를 맡긴다. 겨울은, 눈부신 맑은 그 날 조차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허한 계절이다. 공기의 온도가 아닌,
마음의 온기를 찾아 떠나고 싶은 2월, 3월 시작을 앞두고 불안한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준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가 살아가는 수많은 시간 중에 2월은, 끝이자 시작. 그 시간을 위해 ‘나’는 겨울을 여행한다.
얼음결정들이 서로를 보듬어 만든 형이상학적 눈꽃송이가 아름다운 겨울왕국 풍경을 만든 겨울 산, 그 산을 향해 ‘나’는 스스로의 각오를 다지며 도전한다.
거친 산 정상의 끝 줄기에서 잡은 희망을 보며 의지를 다지고 그 끝에 있는 겨울 바다를 향한다. 시리도록 차갑게 하얀 파도가 부서지지만 그 겨울바다에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차가운 모래에 털썩 주저앉아 마음껏 소리 지르고 토해내고 비워내며 따뜻해진 나를 맞이한다.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가고, 2월이 지나가고, 우리의 시간 속에 달리는 쳇바퀴는 다시 3월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겨울, ‘나’는 현재의 시간에서 갇혀 산과 바다는커녕 회색 도심 속에서 겨울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분주하게 몰려다니는 바쁜 개미군상이 되어 있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의지를 다질 여행을 포기하고, 현실의 겨울이라는 혹독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또 다른 따뜻한 안식처를 찾는다.

여기, 겨울바다를 그리워하며 오늘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나’를 위해 약 4시간(※개인차 있음)의 강행군이 펼쳐지는 시간 여행 패키지를 소개한다.
여행의 일반적인 복장, 예쁘게 꾸미는 것도 좋지만 편한 신발이 필수다.


공간의 매듭, 5 vs 5의 레이저들이 그리는 미래의 그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문화창조원 복합1관.
혹자는 이곳을 테이트모던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했다.
이곳은 창조자들이 꿈꾸는 상상을 가능하게 펼칠 수 있는 대형 공간이다.
공간과 기술이 뒷받침되어야하는 대형 작품들이 전시되었던 이곳에, 이제는 〈노드 5:5(node five five, 노드 오 대 오)〉가 들어섰다.

Node는 knot 매듭이란 뜻의 어원에서 시작한다. 5:5는 어떤 어렵고 복잡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작품의 큰 역할을 차지하는 레이저 10개가 양쪽 5 대 5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작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운영하는 창제작센터의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들이 그려낸 상상이 기술과 만나 실현되었다. 료이치 쿠로카와 비주얼 아티스트, 히로시 마토바 디자이너 이자 프로그래머, 그리고 인터랙티브 아트와 비정형 디스플레이를 연구하는 반성훈 작가가 이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반성훈 작가는 ACC 문화창조원 복합1관을 보고 놀라며 이 거대한 공간에 어떤 작품을 채워야하나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ACC의 창제작센터에 있는 첨단 기기들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기들을 ACC-R(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누구나 사용해도 된다는 것에 더 놀랐다고 전했다.




이 작품의 작가들이 관람객 느끼는 그대로가 전시라고 강조했듯이 〈노드 5:5〉 전시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10개의 붉은 레이저는 쇼를 보여주듯 거대한 스크린을 향해 춤추고, 스크린 영상은 레이저에 의해 용접 되기도하고 점이 되기도 하며 파동이 되기도 한다. 스크린과 레이저의 단출한 쇼는, 전시공간의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스피커 54대의 소리와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된다. 노드 그 이름의 뜻대로 레이저와 소리, 그리고 영상스크린이 매듭을 연결하고 그 연결된 매듭의 고리들을 풀어나간다.




2017년 3월 26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2017년 하반기 프랑스 낭트의 예술센터 ‘스테레오룩스’에서 전시된 후 2018년 상반기 프랑스 파리 ‘라빌레뜨 그랑드 홀’에서 프랑스-일본 수교 160년을 기념해서 전시될 예정이다.

특별하게,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작품은 어렵지 않다. 그냥 그 현장에 서서 약 10분간 펼쳐지는 전시를 무념무상으로 볼 뿐이다. 그래서? 거기서 느끼는 게 있으면 그게 답이고, 느끼는 게 없어도 그것 역시 답이다. 뭔가 거하게 해석해야한다는 의무감도 부담감도 눈치도 버리면 그만. 그냥 그 공간의 시간에 ‘나’의 시간이 있을 뿐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산책하기 좋은 ‘나’의 시간, 현재


매듭의 실타래를 풀고, 올라서면 현재의 시간에 도착한다.
문화창조원 복합2관, 이곳은 마치 한 마을과 같다. 마을 입구의 간판을 지나 들어가면 다닥다닥 붙은 여러 집들과 마주하게 된다.
1층부터 옥탑까지, 이곳은 ‘나는 전시입니다!’를 보여주는 마을 〈클럽 몬스터〉다. 각 방과 각 집에는 작가의 이름과 전시 제목이 붙어 있다.






각 작가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작가들은 그 음악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구상했다. 밥 딜런이 있고, 존 레논이 있고, 핑크 플로이드, U2, 김윤아, 김민기, 한대수….
유행하고 있는 랩과 힙합 음악보다는 과거의 대중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들은 전설이었고 현재를 대변했고 의미를 담았다. 음악을 위안 삼고 이야기와 작품을 즐기며 이곳은 ‘나’를 산책하게 하는 시간이다. 설렁설렁, 천천히, 한 집 한 집, ‘나’는 손님으로 주인 없는 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나의 현재를 마주한다, 살아가고 또 살아가는, 현재의 나의 시간은 이곳에서 희망을 얻고 다시 삶의 의지를 다진다.






역사,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시간
이곳, 저곳,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진 ‘나’




긴 복도를 지나면, 시간여행을 하듯 공간이동을 하듯, ‘나’는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이 있는 새로운 차원의 시간에 놓여진다. 이 공간은 고서들이 있을 것 같은 오래된 서재에 들어온 느낌이다.
아주 두꺼운 낡은 책을 들어 표지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면 거기에 유라시아프로젝트라는 두꺼운 글씨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문화창조원 복합3관 새로운 유라시아 프로젝트 제2장 〈이곳으로부터, 저곳을 향해, 그리고 그 사이 : 네트워크의 극劇〉
이 전시는, 공간 배열이 단순하고 그 규모가 작아 보이지만, 사실 겉으로 보기보다는 무척이나 긴 역사를 담은 복잡하고 생각할 게 많은 아카이브형 전시다. 유라시아에 대한 여러 가지를 수집하여 그것을 엮어 놓은 자료집과 같은 전시다.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유라시아를 만드는 여신의 조정 아래 그녀에 의해 움직이는 여섯 개의 역할이 있다.
정복자인 '에로 로니아레스', 탐험가이자 여행자이자 선교사이며 지도를 만들었던 '트래비스 허', '교역과 상인을 관장한 화폐를 상징하는 감사관 '아데스 나라이', ' 군사정치적 갈등과 이주민, 인구의 이동을 관여하는 '슬라부리 레퓨먼트', 종교와 문화 기술 분야의 책임자인 '벤티오 크놀로 투렐리', 수송을 맡은 '말릭 로딩'

이 여섯 명의 인물은 그저 유라시아를 분류하기 위한 하나의 목차와 같다. 전시회에 가기 전 여섯 주인공이 재밌는 연기를 펼치며 유라시아에 대해 쉽게 알려줄 거라고 예상하면 이 전시는 당황스러울 수가 있다. 그들이 맡고 있는 분야와 그들에게 주어진 색깔에 주목해야 한다. 정복자, 상인, 인구, 종교, 수송, 문화, 군사, 국가....
이 공간, 이 전시의 시간은 무척 진지하다.


누가 새로운 유라시아를 만들 것인가, 누가 새로운 유라시아를 소유할 것인가,
누가 새로운 유라시아를 파괴할 것인가, 누가 새로운 유라시아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새로운 유라시아는 누가 이용할 것인가, 누가 새로운 유라시아에서 살아갈 것인가




공간의 중심에 있는 360도 파노라마 영상에서는 위압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자신이 유라시아를 조정하는 여신임을 알리며 여섯 인물에게 내린 지시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정복자를 내세워 도시를 공격하게 하고 새로운 도시를 세우게 하며 분쟁을 조장하기도 한다. 무역을 하고 상인들에게 세금을 걷고, 정치적 갈등을 조장하고, 사람들은 종교, 문화, 기술을 따르며 그 분야의 방향과 환경에 복종하게 된다. 동양과 서양을 이을 새로운 길을 만들고 국가를 뛰어넘은 연합과 전쟁을 탄생시키고 종식시키기도 한다. 유라시아 역사의 시간이 이곳에서 흘러간다. 이 전시의 팁은 각 인물들의 색깔을 따라가는 것!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에 걸쳐 열리는 ‘새로운 유라시아 프로젝트’는 도시, 네트워크, 영토를 주제로 세 편에 걸쳐 진행된다. 비유를 하자면 두꺼운 책이 시리즈로 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지난 2015년 1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이곳, 저곳, 모든 곳 : 유라시아의 도시〉, 현재가 그 두 번째 〈이곳으로부터, 저곳을 향해, 그리고 그 사이 : 네트워크의 극劇〉. 유라시아 프로젝트 3장은 2017년 06월 〈나의, 당신의, 우리의 것 : 경계와 영토, 그리고 연합〉으로 ‘영토’에 대한 이야기로 대장정이 마무리 된다.




미래는 현재 없이 존재하지 않고, 현재는 과거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I’m T-i-g-e-r




문화창조원 복합4관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
아시아는 근대화 과정에서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잔인하게 역사의 사건을 거쳤다. 작가들은 잔혹성을 부각하기보다 담담하며 온화하게 풀어나간다.
현대화 과정에서 자연 속의 호랑이는 기계를 공격하고, 인간은 인간을 파멸시킨다. 일련의 사건들은 점성술에 의해 그 사건이 일어난 행성을 표시하는 그림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림, 사진, 영상, 자료들이 그 시대의 사건들을 보여준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들을 되짚어보며 흘러가도 좋고, 전시 공간들 사이에 있는 아티스트 토크 영상을 시청하면 전시에 대해 더 깊은 내용을 알 수 있다. 단, 1시간이 넘는 분량이니 시간을 충분히 잡아야한다.




〈노드 5:5〉 - 〈클럽몬스터〉 - 〈새로운 유라시아 두 번째 장-
이곳 으로부터 저곳을 향해 그리고 그 사이 : 네트워크의 극劇〉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다.
문화창조원 복합 4관까지의 긴 여정을 끝내고 나가면, 마탈리 크라셋의 리플랙시티가 존재한다. 테이블 벤치 같은 이 묘한 공공작품은 긴 여정을 끝내고 잠시 앉아 ‘나’의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잠시 신발을 벗어 옆에 두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해본다. ‘나’의 시간이 흘러간다.
이제 ‘나’는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현실로 돌아가야 할 현재의 시간에 놓여진다.

물론, 한 계단을 더 내려가면 ACC in Flux라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시간을 둘러보는 전시도 있지만, 그 시간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판단은 ‘나’의 몫!

 

 

by
국립아시아문화전당웹진 - Ama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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