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있는 그대로의 삶

현대의 진정한 ‘오래된 미래’를 찾아서



유목의 교훈


몽골인을 비롯한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초원지대 거주민들은 주어진 자연조건(춥고 건조한 기후와 광활한 초원)에 적응하여 유목(Nomadism)이라는 생계방식으로 삶을 이어왔다. 유목은 계절의 변화와 물과 풀의 형편에 따라 주기적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목축의 한 형태다. 유목민은 적어도 1년에 네 차례 주거지를 옮긴다. 이동 횟수는 물론 이보다 많아지거나 줄어들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계절에 따라 거처를 옮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소ㆍ말ㆍ양ㆍ염소ㆍ낙타 등 가축을 이끌고 처자식을 데리고 생활도구를 챙기고 천막을 해체하여 이사를 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을 유목민이라 하지 않는다. 유목민은 조상 대대로 사용해 온 목초지를 생활의 근거지로 하여 그 안에서 계절에 따라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옮겨 다닌다. 따라서 한 유목민은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일생을 통하여 자신이 ‘거주할 곳’이 정해져 있다. 다만 이 경우 ‘거주할 곳’은 고정가옥이 아니고 천막을 칠 숙영지(宿營地)다.




유목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에 인위를 가하지 않는 것이다. 대자연의 선물인 목초지에 가축을 풀어놓으면 가축은 그 풀을 뜯어먹으며 자라고 사람은 그 가축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이 유목이다. 풀을 잘 자라게 하기 위하여 비료를 줄 필요도 없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가축에게 따로 사료를 주지도 않는다. 농업이 어떤 식으로든 자연에 인위(人爲)를 가하는 생업이라면, 유목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고 물자를 생산하는 유목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진정한 “오래된 미래”라고 할만하다.
유목의 또 다른 특징은 초원을 이용하되 아무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유목민의 사고에 따르면 땅은 본디 하늘에 속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늘의 선물인 땅을 일시적으로 빌려 쓰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땅에 주인이 생기고, 그래서 땅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공동으로 관리하고 소유해야 할 땅, 이것이 개인의 재산이 되면서 빚어진 비극은 인류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비록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유목과 유목민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교훈은 간단치 않다.






유목민의 가르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목은 이동목축이다. 아니 이동을 하기 때문에 유목이다. 이동하지 않으면 유목 자체가 이루어 질 수 없다. 유목민이 이동하는 이유는 방랑벽이 아니고 물과 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좋은 물과 풀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목축 이것이 유목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동은 몸이 가벼워야 한다. 가축도 적절해야 하고 세간도 너무 많으면 안 된다. 일정한 기준을 넘어가면 이동이 문제가 되고, 결국 유목의 존립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목민들은 가축이든 물건이든 재산을 무한정 증식시킬 수 없다.
무한정한 부의 증식이 제한되는 것처럼 구성원의 절대빈곤 역시 제한되는 것이 유목사회의 특징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가축을 소유하지 못한 유목민은 유목을 중단할 수밖에 없으니, 만약 그렇게 되면 강고한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유목사회 자체가 붕괴되어 버린다. 실제로 역사 속의 유목사회를 보면 구성원 간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시되었다. 낮은 생산성, 열악한 기후와 자연조건으로 인하여 씨족 혹은 부족단위로 단결하지 않으면 생존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목사회에서 언제나 호혜평등과 상부상조가 최선의 미덕으로 지적되었던 이유다. 생존조건이 극부(極富)와 극빈(極貧)의 출현을 저지하고, 공멸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역사 속의 유목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살았다. 물질 만능주의, 생산 지상주의, 각종 지위쟁탈에 찌든 현대인들이 한 번쯤 되새겨 볼만하지 않은가@f3


(이평래 한국외국어대학교 몽골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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